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 밭일을 하던 70대 남성이 벌에 쏘인 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주변 사람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대가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생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위급한 상황이었다. 단순히 따갑고 붓는 정도로 여기기 쉬운 벌 쏘임이 순식간에 심정지로 이어질 뻔한 일이었다.
20일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1시쯤 경남 함안군 군북면의 한 밭에서 농작업을 하던 70대 남성이 벌에 쏘인 뒤 의식을 잃었다.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하며 환자를 의료기관으로 이송했다.
벌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여름철을 맞아 비슷한 사고가 잇따를 가능성이 커지면서 소방당국이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산행과 농작업, 휴가철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데다 처마와 나무, 수풀, 땅속 등에 만들어진 벌집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건드리는 사고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벌 쏘임 환자 10명 중 8명, 7~9월 발생
소방청이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벌 쏘임 관련 119구급대 이송 현황을 분석한 결과, 환자는 모두 2만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78.7%가 7~9월에 집중됐다.
3년간 발생 인원을 연평균으로 환산한 월별 규모를 보면 9월이 2,040명으로 전체의 29.2%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8월이 1,880명(26.9%), 7월이 1,578명(22.6%)으로 뒤를 이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부터 벌집의 규모와 일벌 개체 수가 늘어나고, 8·9월에는 먹이 활동과 벌집 방어 행동이 활발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여름 휴가철 산행과 캠핑, 농작업에 이어 추석을 앞둔 벌초와 성묘까지 겹치면서 사고 위험은 초가을까지 이어진다. 벌집이 나뭇가지나 건물 처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땅벌류는 수풀이나 무덤 주변, 낙엽 아래 땅속에 집을 짓기 때문에 예초기 작업이나 산행 도중 벌집을 건드리기 쉽다.
벌에 쏘인 뒤 심정지에 이른 환자도 끊이지 않았다. 최근 3년 동안 벌 쏘임으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는 모두 66명이었다. 연도별로는 2023년 24명, 2024년 22명, 지난해 20명이다. 해마다 20명 이상이 벌 쏘임 직후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진 셈이다.
소량의 벌독에도 전신 쇼크.. 피부 증상 없어도 위험
벌에 쏘이면 대개 쏘인 부위가 붉어지거나 붓고 심한 통증과 가려움이 나타난다. 그러나 벌독에 민감한 사람은 한 번만 쏘여도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할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물질이 몸에 들어온 뒤 여러 장기에 급격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응급질환이다. 벌독이 혈관을 확장하고 기도를 붓게 하면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호흡이 어려워진다. 입술과 혀·목이 붓거나 전신 두드러기, 구토, 설사, 어지럼증, 식은땀, 가슴 답답함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상태가 악화하면 의식 소실과 심정지로 이어진다.
서울아산병원 질환정보에 따르면 아나필락시스 증상은 원인 물질에 노출된 직후부터 대부분 1시간 안에 나타난다. 즉시 치료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크지만, 진단과 처치가 늦어지면 사망할 수도 있다. 특히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나 쉰 목소리, 어지럼증, 의식 저하가 생기면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해야 한다.
장윤석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도 병원 건강정보를 통해 벌독 아나필락시스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증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벌에 쏘여 심한 전신 반응을 경험한 사람은 알레르기 전문의의 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에피네프린 자가주사제를 야외활동 때 지니는 것이 안전하다. 증상이 나타나면 자가주사제를 허벅지 바깥쪽에 사용한 뒤 상태가 나아지더라도 반드시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가야 한다.
여러 마리의 벌에 한꺼번에 쏘이는 경우에는 알레르기 체질이 아니더라도 다량의 벌독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 어린이와 고령자, 심혈관·호흡기 질환자는 증상이 빠르게 악화할 가능성이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입안이나 목 주변을 쏘이면 국소 부종만으로도 기도가 좁아질 수 있으므로 즉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벌집 건드렸다면 머리·얼굴 가리고 신속히 대피
벌집을 발견했을 때는 크기가 작더라도 직접 떼어내거나 살충제를 뿌려서는 안 된다. 긴 막대기로 벌집을 건드리거나 불을 피워 제거하려는 행동도 벌떼의 집단 공격과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벌집에서 거리를 두고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 뒤 119에 신고해야 한다.
벌이 주변을 맴돌 때 손이나 옷으로 휘젓는 행동은 벌을 자극할 수 있다. 벌집을 건드려 여러 마리가 공격해 오면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머리와 얼굴을 옷이나 팔로 보호하면서 벌집에서 신속히 멀어져야 한다. 야외활동 전에는 주변에 벌이 반복적으로 드나드는 구멍이나 틈이 없는지도 살피는 것이 좋다.
소방당국은 검은색 등 어두운 옷보다 밝은 계열의 긴소매 옷과 긴바지를 착용해 피부 노출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향이 강한 향수나 화장품, 헤어스프레이 사용은 자제하고, 단맛이 나는 음료와 과일 등은 벌이 접근하지 않도록 밀폐 용기에 보관해야 한다.
벌에 쏘였을 때 피부에 벌침이 남아 있다면 손가락으로 집어 짜기보다 카드처럼 평평하고 단단한 물건으로 피부 표면을 밀어내듯 제거하는 것이 좋다. 다만 말벌은 침을 남기지 않고 여러 차례 공격할 수 있어 침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상처는 비눗물이나 깨끗한 물로 씻고, 천으로 감싼 얼음주머니를 대면 통증과 부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후 최소 30분 동안 몸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호흡곤란과 가슴 답답함, 쉰 목소리, 전신 두드러기, 구토, 어지럼증, 식은땀, 의식 저하 가운데 하나라도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119에 신고해야 한다. 혼자 운전해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은 도중에 의식을 잃을 위험이 있어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소방청은 “벌 쏘임은 자칫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벌집을 발견하면 무리하게 제거하지 말고 119의 도움을 요청하고, 벌에 쏘인 뒤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신고해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