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이는 가상의 장면이다. 오전 8시 20분, 인천의 한 대형 스마트 물류센터. 출근한 작업자들이 안전조끼를 착용하고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한다.
AI 시스템은 작업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안전모와 안전화, 형광조끼 착용 여부를 자동으로 점검한다. 잠시 뒤 지게차가 오가는 통로에 들어서자 안전조끼가 “삐-” 하는 경고음을 울리며 진동한다. 반대편에서 지게차가 접근하고 있다는 신호다.
잠시 후 한 작업자가 허리를 숙여 박스를 정리하는 사이, 천장에 설치된 AI 카메라가 그의 자세를 분석한다. 무거운 화물을 반복적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이 계속되자 모니터에 ‘근골격계 부담 위험 증가’라는 알림이 표시된다.
관제실 직원은 무전기로 현장 관리자에게 연락했고, 관리자는 해당 작업자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지시했다. 이곳에서는 안전관리자가 현장을 둘러보기 전에 AI가 먼저 위험을 발견한다.
◇AI는 24시간 쉬지 않는 안전관리자
스마트공장과 물류센터, 건설현장에서는 AI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 영상분석 시스템은 작업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안전모와 안전벨트 착용 여부는 물론 위험구역 접근, 작업자 쓰러짐, 화재와 연기 발생, 지게차와 보행자의 충돌 위험까지 자동으로 감지한다. 여기에 웨어러블 기기까지 더해지면서 관리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스마트 안전모는 작업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일부 장비는 심박수와 체온, 움직임까지 측정한다. 고온 환경에서 체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거나 일정 시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즉시 관리자에게 경고가 전달된다.
용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책임자인 D건설 김모 부장은 “폭염 속에서 작업자가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고를 예방하는 데 AI와 웨어러블 장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는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AI가 추락 위험 행동을 분석해 작업을 일시 중단시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안전을 위한 기술’인가, ‘감시를 위한 기술’인가
하지만 AI가 수집하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또 다른 질문도 커지고 있다. “어디까지가 안전관리이고 어디부터가 감시인가.”라는 질문이다
위험 상황을 알려주는 기능은 도움이 되지만 AI 시스템은 작업자의 이동 동선과 작업 속도, 휴식 시간, 특정 구역 체류 시간 등을 데이터로 남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작업 효율과 안전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정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감시’로 느껴질 수 있다.
노동계에서는 AI가 안전관리라는 이름 아래 과도한 감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작업 효율을 평가하거나 인사관리 자료로 활용될 경우 노동자의 사생활과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문제다.
◇AI도 실수한다
AI를 맹신하는 것도 또 다른 위험 요인이다. 예를 들어 AI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고 경고했는데 확인해 보니 작업자가 모자를 깊게 눌러쓴 것을 잘못 인식한 경우 등이다. 비가 오거나 먼지가 많은 날에는 오인식이 더 잘 발생할 수 있다.
역광이나 연기, 강한 조명, 작업자의 복잡한 움직임은 AI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변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AI를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안전관리자의 보조자’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현장의 특수한 상황과 작업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안전문화가 필요하다
산업혁명 시대의 안전은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새로운 기준이 요구된다.
수집된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 안전 목적 외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어떤 제도를 마련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신뢰할 수 있는 ‘AI 안전관리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I가 수집하는 정보의 범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데이터 활용 목적을 명확히 하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전과 인권,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AI는 분명 산업현장의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사람이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찾아내고, 사고를 미리 예측하며, 위급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경고를 보낸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산업안전은 단순히 사고를 줄이는 문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프라이버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안전을 위해 도입된 기술이 노동자를 끊임없이 감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감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AI 시대 산업안전의 진정한 과제는 첨단 기술을 얼마나 많이 도입했느냐가 아니다. 기술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것이 앞으로 산업현장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안전의 조건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