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2026년 여름, 지구촌은 ‘역대급 폭염’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펄펄 끓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북미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4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며 인간의 일상과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장마가 채 끝나기도 전에 기록적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며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이제 폭염은 단순히 ‘무더운 여름’이 아니다. 과거에 폭염은 폭우나 태풍, 산불에 비교하면 크게 우려할 만한 재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인간과 생태계, 산업 전반을 위협하는 대표적 자연재해로 인식되고 있다. 가뭄과 산불, 식량 생산 감소, 생태계 변화, 감염병 확산, 에너지 위기까지 연쇄적으로 불러오는 복합재난이다.
국가의 폭염 대응은 도시설계와 농업, 산업, 보건, 재난관리 체계를 모두 바꾸는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올여름의 기록적인 더위는 이에 대한 ‘경고’다. 폭염은 더 이상 예외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기후 체계의 일부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새로운 기후환경의 현실이다.
◇올해는 왜 유독 더울까…뜨거운 공기를 가둔 ‘열돔’
세계기상기구(WMO)와 유럽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는 올해 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4도 이상 상승했으며, 국제사회가 설정한 마지노선인 1.5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턱밑까지 차올랐다고 공식 선언했다.
최근의 폭염은 여러 기상 요인이 동시에 겹치면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지구온난화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사용이 급증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꾸준히 상승했다. 온실가스는 지구가 우주로 방출해야 할 열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2~1.3도 높아졌고, 이 작은 변화가 폭염의 빈도와 강도를 크게 키웠다.
기상 전문가들은 “평균기온이 1도 상승했다고 해서 단순히 날씨가 1도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극한 고온이 발생할 확률 자체가 몇 배 이상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현상이 바로 열돔(Heat Dome)이다. 열돔은 강한 고기압이 한 지역 상공을 오랫동안 덮으면서 뜨거운 공기를 가둬버리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압력솥의 뚜껑처럼 하늘에 거대한 뚜껑이 생기는 셈이다.
강한 햇빛으로 지표면이 달궈지면 뜨거운 공기는 원래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강한 고기압이 이를 막으면서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지표는 더욱 달궈지고 다시 공기를 데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올해 북미와 유럽, 중국 등지에서 나타난 기록적인 폭염 상당수가 이러한 열돔 현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열돔’은 왜 생겼을까…대기가 정체된 ‘오메가 블로킹’
열돔이 생긴 가장 직접적 원인은 대기의 흐름이 멈춰 서는 ‘블로킹(Blocking)’ 현상에 있다.
정상적인 대기 순환 체계에서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편서풍을 타고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날씨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올해는 서유럽 상공과 동아시아 상공에 거대한 고기압이 수주일 동안 붙박이처럼 멈춰 서는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 중에서도 대기 흐름이 그리스 문자 ‘Ω(오메가)’ 모양으로 배치되는 ‘오메가 블로킹’은 기상학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정체 현상이다. 고기압의 좌측과 우측에 강한 저기압이 쐐기처럼 박혀 대기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앙에 위치한 고기압 영역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벽처럼 고착되어, 아래쪽의 뜨거운 공기를 지속해서 가두는 ‘열돔’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더워진 북극…약해진 제트기류
그렇다면 왜 대기는 흐름을 멈추고 갇혀버린 것일까? 과학자들은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북극의 온난화를 지적한다. 북극은 전 지구 평균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다. 이를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 현상이라고 한다.
지구 대기 순환의 핵심 동력은 차가운 북극과 뜨거운 적도 사이의 기온 차이다. 이 두 지역의 온도 차이가 클수록 상공 10km 부근에서 부는 강한 바람인 ‘제트기류’가 서에서 동으로 빠르고 곧게 흐르며 대기를 순환시킨다. 하지만 북극이 급격히 따뜻해지면서 적도와의 온도 차이가 대폭 줄어들었다.
동력을 잃은 제트기류는 팽팽함을 잃은 고무줄처럼 느슨해지며 남북으로 크게 뱀처럼 사행(蛇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크게 굽이치는 과정에서 제트기류의 모퉁이에 걸린 고기압들이 정체되면서 오메가 블로킹이 완성된다.
이렇게 되면 고기압이나 저기압이 한곳에 오래 머물게 된다. 그 결과로 폭우는 오래 지속되고, 폭염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기상학자들이 “날씨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는 시골보다 뜨겁다…‘도시열섬’ 현상
폭염을 더욱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도시열섬' 현상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태양열을 강하게 흡수했다가 밤에도 천천히 열을 방출한다.
도시에서는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 산업시설에서 나오는 인공열까지 더해져 도심 기온이 주변보다 3~7도 이상 높게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밤에도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열대야는 단순히 잠을 설치는 문제가 아니다. 인체가 낮 동안 축적된 열을 충분히 식히지 못하면서 심혈관질환과 온열질환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바다도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폭염은 육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에는 ‘해양 폭염(Marine Heatwave)’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바다 역시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이 발생하고, 양식장에서는 물고기와 전복, 멍게 등이 집단 폐사한다.
우리나라 동해에서는 난류의 영향으로 아열대성 어종이 늘어나는 반면, 명태처럼 차가운 바다를 좋아하는 어종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간을 조용히 위협하는 자연재난
과거에는 ‘100년에 한 번’ 나타날 것으로 여겨졌던 폭염이 이제는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폭염이 더욱 자주, 더 오래,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태풍은 강한 바람과 폭우 때문에 위험성이 눈에 잘 보인다. 그러나 폭염은 조용히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폭염을 가장 치명적인 기상재난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