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지구촌 곳곳이 ‘불의 계절’에 들어섰다. 미국 서부에서는 유타와 콜로라도를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번지며 수천 명이 대피했고,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서는 관광객과 주민들이 긴급히 몸을 피했다. 그리스에서도 산불이 민가를 덮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4일 AP통신와 NBC뉴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한때 특정 계절, 특정 지역의 자연재해로 여겨졌던 산불은 이제 폭염과 가뭄, 강풍이 겹칠 때마다 도시와 관광지, 산업시설까지 위협하는 복합재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강진보다는 덜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참혹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기후재난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미 서부, 산불보다 빠른 '공포'.. “40개 안팎 대형 산불 동시 진행”
미국 서부의 산불 상황은 심상치 않다. AP통신에 따르면 콜로라도주 덴버 남서쪽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수천 명에게 대피령을 내리게 했고, 160채가 넘는 구조물을 파괴했다. 이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불규칙한 바람, 겨울철 적설량 부족이 겹치며 빠르게 확산했다. 현재 미국 서부 여러 주에서 40개 안팎의 대형 미진화 산불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유타주 상황도 긴박하다. 코튼우드 산불은 9만2,000에이커 이상으로 번지며 한때 미국 내 최대 규모의 활성 산불로 기록됐다. 현지에서는 강풍과 낮은 습도가 불길을 키웠고, 유타주에서는 올해 이미 380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사람의 부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크기는 서울시 면적의 60% 수준에 달하는 광대한 크기다.
산불은 진화 현장에도 큰 희생을 남겼다. 콜로라도와 유타 접경 지역에서 산불 진화에 투입됐던 헬리택 소방대원 3명이 숨졌다. 반복되는 대피령 속에 주민들은 집과 농장, 가축을 지킬 수 있을지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빠르게 번지는 산불 공포로 인해 유타,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 워싱턴 주민들은 정신적 충격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남부 관광지까지 덮친 불길…캠핑장·공항도 멈췄다
프랑스 남부도 산불 공포에 휩싸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서는 최근 폭염 이후 여러 산불이 발생했고, 약 2,000명의 소방관이 진화에 투입됐다. 특히 스페인 국경과 가까운 오드 지역에서는 강풍이 불길을 키우며 900헥타르가량이 불에 탔다.
피해는 관광지로도 번졌다. 페르피냥 인근 카네앙루시용에서는 창고와 요트가 불에 탔고, 주민과 관광객 1,500명가량이 대피했다. 일부 공항 운영도 중단됐다. 프랑스 남부 산불로 관광객과 주민 약 3,000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프랑스 산불의 배경에는 유럽 전역을 덮친 기록적 폭염이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말 유럽의 이례적 폭염이 인간 건강, 생태계, 농업, 인프라, 노동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과 산불 위험이 증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 민가 덮친 산불에 부자 숨져.. 지중해의 여름, 더 위험
그리스에서도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 외곽에서 산불이 주택을 덮쳐 아버지와 12세 아들이 숨졌고, 어머니는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중부 프티오티다 지역에서도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고, 135명 넘는 소방관과 항공기 25대가 진화에 투입됐다.
그리스는 매년 여름 산불과 싸워왔지만, 최근 양상은 더 거칠어지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 특유의 건조한 여름에 폭염과 강풍이 겹치면 작은 불씨도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섬 지역이나 해안 관광지에서는 도로가 막히고 항구·해변 대피가 필요해질 수 있어 인명 피해 위험도 커져, 휴양지의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유럽연합(EU)도 올해 산불 시즌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EU공동연구센터는 지난 1일 기준 올해 EU 지역에서 962건의 산불이 감지됐고, 이는 장기 평균 446건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올해 들어 산불로 탄 면적은 11만8,737헥타르,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513만 톤으로 집계됐다.
기후극한, 이젠 예외가 아닌 일상
전문가들은 최근 산불을 단순한 자연발화나 관리 부실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기후변화로 대기가 더 뜨겁고 건조해지면서 숲과 초지가 빠르게 마르고, 한 번 불이 붙으면 강풍을 타고 대형화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 온난화가 특히 북반구와 온대림 지역의 산불 활동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결국 구조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만다 버지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기후전략 책임자는 최근 기후 분석에서 “2026년 5월은 전 세계적으로 역대 두 번째로 더운 5월이었다”며 “유럽의 이례적으로 이른 강한 폭염은 기후 극한이 얼마나 빠르게 예외가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테레사 리베라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겸 그린딜 책임자도 최근 유럽 폭염을 두고, 일부에서 제기되는 '기후위기 부정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극단적 고온이 단순한 일시적 이상기후가 아니라 기후 대응 지연이 만든 경고라고 보고, 깨끗한 공기와 물,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 아니다
산불은 더 이상 미국 서부나 지중해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봄철 대형 산불뿐 아니라 여름철 폭염·건조·강풍이 겹치는 시기에 산림과 도심 경계지역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산림 인접 주거지, 관광지, 캠핑장, 전력시설, 요양시설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피 취약성이 큰 곳이다.
산불 대응은 소방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산림 연료 관리, 송전선과 전력시설 점검, 관광지 안전관리, 재난문자, 교통통제, 취약계층 대피지원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산불은 한 번 대형화되면 진화보다 대피가 먼저이고, 대피보다 중요한 것은 불이 커지기 전 위험을 줄이는 일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산불은 숲만 태우지 않는다. 주택과 일터, 관광지와 도로, 공항과 전력망에 손실을 입히면서 자연재난이 도시 인프라를 멈춰세우는 복합재난으로 연결되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합재난이 잦아질 경우, 도시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는 만큼, 방재에 대한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