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산과 들이 푸르러지는 여름철에 의외의 복병이 있다. 바로 벌 쏘임 사고다. 벌에 쏘이면 대부분은 따끔한 통증으로 끝나지만, 일부는 단 몇 분 만에 생명을 잃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7~9월은 벌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로, 산에 갈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일 경기 동두천시의 한 양봉장에서 60대 남성이 벌에 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남성은 아는 사람이 경영하는 양봉장에서 벌통을 구경하다가 벌에 쏘였다.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 중 숨졌다.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벌 쏘임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9만 명이 넘으며, 매년 10명 안팎의 사망자(심정지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전체 사고의 약 80%가 벌초와 성묘, 산행이 집중되는 7월에서 9월 사이에 발생했다.
◇벌 쏘임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이유: ‘아나필락시스 쇼크’
단순히 벌독 자체의 독성 때문에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쏘인 부위가 붓고 통증이 나타나는 정도로 회복된다.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원인은 바로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라 불리는 급성 전신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다.
벌독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벌독 성분이 몸에 들어오면 특정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온몸의 혈관이 급격히 확장되고 혈압이 뚝 떨어진다. 이와 동시에 기도가 부어올라 호흡 곤란이 찾아오는데, 심하면 의식을 잃거나 심정지에 이르게 된다.
치료가 늦으면 수십 분 안에 사망할 수도 있다. 소방청 구조 통계에 따르면, 벌 쏘임 사고로 인한 사망자 중 약 79%가 벌에 쏘인 지 불과 1시간 이내에 사망했다. 그만큼 진행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이다.
문제는 자신이 벌독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도 어느 순간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또 다발성 벌 쏘임도 사망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말벌 떼의 공격을 받아 수십~수백 군데를 쏘이면 독성 자체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벌독이 근육을 파괴하고 적혈구를 손상시키며 급성 신부전이나 간 손상, 심장 기능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벌은 봄부터 활동을 시작하지만 여름 후반부터 공격성이 크게 높아진다. 7월 이후에는 말벌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8~9월에는 유충을 보호하기 위해 벌집 방어 본능이 가장 강해진다.
특히 장수말벌과 말벌류는 사람이나 동물이 벌집 근처에 접근하면 위협으로 판단해 집단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무더위가 길어지고 활동 기간도 늘어나면서 벌집 제거 신고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벌 쏘임 사례들
2026년 5월 9일 오후 6시가 넘어서 제주시 해안동 해안교차로 서쪽 도로를 주행하던 50대 운전자가 차 안으로 들어온 벌에 쏘여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켰고, 순식간에 호흡 곤란과 의식 저하가 찾아와 차량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신호 대기 중이던 앞차를 추돌하여 운전자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024년에는 강원도의 한 산에서 벌초를 하던 60대 남성이 말벌에 여러 차례 쏘인 뒤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끝내 숨졌다. 같은 해 경북에서는 산에서 작업하던 70대가 벌떼의 공격을 받은 뒤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했다.
2023년에도 충북에서 벌초 작업 중 말벌의 공격을 받은 60대가 숨졌으며, 전남에서는 등산객이 벌에 쏘인 뒤 의식을 잃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경남에서는 벌초를 하던 70대가 말벌에 수십 군데를 쏘여 숨졌고, 2021년에는 산림 작업자가 말벌떼 공격을 받은 뒤 치료 중 사망했다.
◇벌 쏘임을 막기 위해서는?
어두운색 옷은 금물이다. 벌은 곰이나 오소리 같은 천적의 색상인 검은색, 갈색 등 어두운색에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야외 활동 시에는 흰색이나 노란색 등 밝은 계열의 긴소매 옷을 입는 것이 안전하다.
벌을 자극할 수 있는 향수나 향이 강한 스프레이, 화장품 사용도 피해야 한다.
벌집을 건드렸거나 벌이 달려들 때 손을 휘저으면 벌을 더 자극하게 된다. 이때는 머리를 감싸고 즉시 자세를 낮춰 20m 이상 신속하게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말벌은 자기 집에서 멀어지면 대개 추격을 멈춘다.
소방청은 벌집 제거는 반드시 전문 인력에게 맡기고, 산행이나 벌초 전에는 주변에 벌집이 있는지 확인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벌초를 시작하기 전 막대기로 주변 풀숲을 먼저 두드려 벌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작업 중 벌이 나타나면 즉시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벌을 발견하면 먼저 흥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벌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팔을 휘젓거나 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공격성을 자극할 수 있다.
벌집을 발견하면 즉시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벗어나야 하며, 벌이 공격하기 시작하면 몸을 낮춘 채 20~30m 이상 신속하게 피하는 것이 좋다.
벌독 알레르기를 진단받은 사람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에피네프린 자동주사기를 항상 휴대하는 것이 권장된다.
◇쏘였을 때 응급처치는?
벌의 추가 공격을 피하기 위해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뒤 환자를 편안한 자세로 눕히고 안정을 취하게 한다.
꿀벌은 침을 남긴다. 카드의 모서리 등으로 피부를 살살 밀어 침을 제거한다. 단, 말벌은 침이 남지 않으며 억지로 상처를 쥐어짜면 독이 더 퍼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통증 부위를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얼음물이나 냉찜질로 붓기를 가라앉힌다.
과거 알레르기 병력이 있다면 상비해 둔 ‘에피네프린(자가 주사기)’을 즉시 투약해야 한다.
식은땀, 두드러기, 구토, 호흡 곤란,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즉시 119에 신고하거나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이송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