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백 모씨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지인이 운영하는 주점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참사 당일 밤 11시께 가게 근처에 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곧바로 의식이 없는 사람을 이송하고 눕힐 공간을 확보하는 등 긴급구조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백 씨는 지난 4월 20일 서울 자택을 나선 뒤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닷새 뒤인 25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는 나흘 뒤인 29일 포천시의 한 산 중턱에서 스스로 숨진 채 발견됐다.
10·29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전 백 씨는 외향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적극적으로 일하며 가족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참사 이후 가족과 대화가 단절되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등 변화를 보였다.
이런 변화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백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후군을 겪으며 우울증이 심해져 사망에 이르렀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심리학 전문가는 “참사 현장의 구조와 사망자 이송 과정에서 외상을 경험한 것으로 보이며, 가게의 경영난으로 부채의식과 무기력감이 겹치며 사망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특조위가 30일 제61차 위원회 회의를 열고 백 씨를 이태원 참사의 ‘160번째 희생자’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특조위 출범 이후 진상조사 활동에 근거해 내린 첫 번째 진상규명 결정이다.
특조위는 언론 보도를 통해 백 씨의 사망을 인지하고 지난 5월 19일 조사를 개시하고 백 씨가 정신적 피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진상규명 조사 결과를 확정했다.
특조위는 백 씨 사망 이전 고위험 신호가 있었음에도 전문 인력의 직접 방문 등 적극적 지원 대책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6일 행정안전부는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에 따라 백 씨를 참사 희생자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결정에 따라 백씨의 유가족은 재난안전법과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에 따른 지원을 받게 됐다.
이에 더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조사하는 조직인 특조위도 백씨를 희생자로 인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백씨와 유가족이 국가에 피해를 물을 법적 자격이 생겼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은 참사 당시 현장에서 희생당하거나 1~2주 안에 사망한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참사 이후 발생한 죽음과 참사의 관련성을 누가 어떤 절차로 판단할지에 관한 근거가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조위는 이런 사안을 광의의 진상규명 조사 활동에 포함해 직권 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참사 이후의 정신적 피해와 사망 사이의 관련성을 검토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단순히 개별 사건의 판단을 넘어, 참사 이후 피해 범위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송두환 특조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참사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과 피해자 권리 보장의 원칙을 다시 확인한 의미가 있다”며 “유사한 피해를 겪는 분들이 제도의 문턱 앞에서 다시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피해자 지원 제도의 미비점을 살피고 개선하는 데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수습 과정·후속 조치와 책임 소재를 밝히고, 피해자 권리 보장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다. 또 희생자 추모, 피해자 권리 보장, 재발 방지 대책 수립, 공동체 회복도 목표로 하고 있다.
2024년 4월 10일 시행된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설립 근거다.
특조위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2명, 비상임위원 6명으로 구성됐고 2025년 6월 17일부터 공식 조사 업무를 시작했다. 참사 발생 2년 7개월, 특조위 구성 9개월 만이다. 활동 기간은 조사 개시일로부터 1년으로 돼있다.
조사 방식은 피해자가 신청한 사건과 위원회가 직권으로 수행하는 조사를 나누어 진행하며, 2026년 6월 22일 기준 신청 사건은 총 329건, 직권 사건은 총 166건이다.
송두환 상임위원은 2026년 6월 23일 신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고, 같은 날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특조위는 법정 활동 1년 기간 안에 조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고 보고, 활동 기간을 내년 12월까지 1년 3개월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실·행정안전부·경찰·소방 등 상급 지휘 체계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장 여부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SNS 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