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베네수엘라 강진, 강 건너 불 아니다”.. 포항지진의 ‘한반도 경고’

경주 규모 5.8·포항 규모 5.4 지진 이후 흔들린 ‘지진 안전지대’ 인식
양산단층 등 활성단층대 조사 진행.. 전문가들 “규모 6.0 이상 가능성 배제 못해”
공공시설물 내진율 82.7%.. 2035년까지 100% 목표, 민간 건축물은 여전히 과제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지난 2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7급 '쌍둥이 강진'으로 그 피해가 역대급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미 사망자 1,400명을 넘어서고 5만명 수준의 실종자를 고려할 때 사망자는 눈동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타전이다. 먼나라 남의 일 같지만, 경주와 포함해서 발생한 5급 지진만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큰 경종인 셈이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해 긴급 회의를 열어 국내 지진 대응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있지만, 현대 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자연재난인 만큼, 장기 플랜에 따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경주와 포항이 바꾼 질문.. “한반도는 정말 안전한가”

한반도 지진 위험이 국민적 의제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 지진이었다. 당시 경주 남남서쪽 지역에서 규모 5.1의 전진이 발생한 뒤, 약 48분 뒤 규모 5.8 본진이 이어졌다. 1978년 기상청 계기 관측 이후 국내에서 기록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흔들림은 영남권을 넘어 전국 곳곳에서 감지됐고, 지진 신고가 빗발쳤다.

 

경주 지진은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문화재와 건축물 피해를 남겼다. 불국사 기와 일부가 떨어지고, 첨성대 등 주요 문화재에 대한 긴급 점검이 이뤄졌다. 문화재청 조사에서는 영남권 문화재 60건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재가 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2017년 11월 15일, 이번에는 포항이 흔들렸다. 포항 지진의 규모는 5.4로 경주 지진보다 작았지만 피해는 더 컸다. 진원이 상대적으로 얕았고, 도심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파트 외벽이 떨어지고 학교 건물이 갈라졌으며, 주택과 상가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이재민이 장기간 대피소 생활을 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사상 처음으로 일주일 연기됐다. 지진이 단순히 건물을 흔드는 재난을 넘어 교육, 주거, 행정, 지역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포항 지진이 더 아팠던 이유.. 규모보다 가까운 진원과 도시 취약성

포항 지진은 규모만으로 피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남겼다. 경주 지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피해는 더 광범위했다. 진원의 깊이가 얕고 생활권과 가까웠던 데다, 일부 지역의 지반 특성과 건물 취약성이 겹친 결과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어디에서, 얼마나 얕게, 어떤 지반과 건축물 위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피해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포항 지진은 이후 지열발전과의 연관성 논란까지 이어졌다. 정부조사연구단은 지난 2019년 포항 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 과정에서 촉발된 지진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진 위험이 단지 자연 단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수 주입이나 지하 개발 같은 인간 활동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지진을 예외적 자연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토 개발과 에너지 정책, 도시계획 단계에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계기였다"며 "특히, 한반도가 상대적으로 지진 안전 지대라는 논리도 이젠 사라지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조언했다. 
 

베네수엘라 지진, 경주·포항의 1천배 강해

 

문제는 포항과 경주 지진은 베네수엘라 지진에 비해 초소형 지진이라는 점이다.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규모 7.2와 7.5의 연쇄 강진은 한국이 겪은 대표적 지진인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과 비교해 규모 자체가 훨씬 컸다. 경주 지진은 규모 5.8로 국내 계기 관측 이후 가장 큰 지진이었고, 포항 지진은 규모 5.4였지만 도심과 가까운 얕은 진원 탓에 주택·학교·상가 피해와 장기 이재민을 낳았다.

그러나 지진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로그 척도'라  단순히 '2'라는 숫자 차이보다 그 에너지 방출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규모 7.5 지진은 포항 지진보다 약 1,400배, 경주 지진보다 약 350배 많은 에너지를 낸 것으로 계산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여기에 규모 7.2와 7.5  강진까지 1분도 안 돼 이어지면서,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포항 지진의 1,000배를 훌쩍 넘는 충격을 연속으로 받은 셈이다.

다만 피해 규모는 단순히 지진 에너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진원 깊이, 지반 특성, 건축물 내진 성능, 인구 밀집도, 구조·의료 대응 역량에 따라 실제 피해는 달라진다. 바꿔 말하면, 예방과 대비 등에 대해 평소 어떻게 준비했느냐가 그 피해를 판가름하는 요인인 것이다. 

 

양산단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숨은 단층 찾는 작업

다행인 점은 한반도가 일본이나 튀르키예, 베네수엘라처럼 판 경계에 직접 놓인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판 내부 지역이라고 해서 지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인 응력이 기존 단층을 따라 방출되면 중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경주와 포항 지진 이후 동남권 단층대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단층 가운데 하나는 양산단층이다. 경주에서 양산, 부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단층대로, 주변에는 울산단층 등 여러 단층이 분포한다. 포항 지진 이후에는 남한 내 활성단층이 수백 개에 이른다는 연구와 보도가 나오면서, 아직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단층까지 고려할 경우 안전지대가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도 전국 단층 조사에 나서고 있다. 행안부는 기상청, 해양수산부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전국적인 단층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층 조사는 단순히 지질학적 호기심의 영역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지, 주요 시설물과 도시가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판단하는 기초 자료다. 활성단층 지도가 정교해질수록 내진설계 기준, 원전·댐·교량 같은 국가기반시설 관리, 지진해일 대비 계획도 더 현실적으로 세울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내진율은 올라가지만.. 민간 건축물과 노후 시설은 숙제

지진 피해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을 2035년까지 10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내진보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공공시설물 내진율은 82.7%다.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지만, 아직 보강이 필요한 시설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민간 건축물이다. 공공시설물은 정부가 계획을 세워 예산을 투입할 수 있지만, 민간 건물은 소유자 부담과 비용 문제, 제도 인식 부족이 함께 작용한다. 오래된 다세대주택, 상가, 소규모 건축물은 내진 성능이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진이 발생했을 때 주민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학교나 관공서가 아니라 집과 직장이라는 점에서 민간 영역의 내진 보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는 민간 시설물의 내진 성능 확보를 위해 비용 보조와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보강으로 이어지려면 건물 소유자가 자신의 건물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 제공, 비용 부담을 낮추는 지원, 내진 성능 인증제 확대가 함께 가야 한다. 지진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취약한 건물은 미리 찾아낼 수 있다.

 

대피 장소 1만1,366곳.. “알고 있어야 쓸 수 있다”

시설물 보강만큼 중요한 것은 국민 행동요령이다. 지진은 예보가 어렵고, 흔들림이 시작된 뒤 대피에 주어진 시간은 짧다. 행안부는 현재 지진에 대비한 옥외대피장소 1만1,366곳과 지진해일 긴급대피장소 680곳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또 시설 관리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올해에는 ‘지진안전 AI 영상공모전’과 찾아가는 교육, 지진 체험 및 대피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피 장소가 지정돼 있다는 사실과 국민이 실제로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집 근처 대피 장소가 어디인지, 흔들림이 시작됐을 때 탁자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는지, 해안가에서는 지진 뒤 지진해일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등을 평소에 익혀야 한다. 포항 지진 당시 수험생과 학교, 병원, 아파트 주민들이 겪은 혼란은 훈련과 매뉴얼이 일상화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해외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 사례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지진 대응 체계를 철저히 점검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지진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평소 행동요령을 꼭 숙지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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