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베네수엘라 북부 해안 도시 라과이라. 쌍둥이 강진이 휩쓸고 간 도시는 더 이상 예전의 스카이라인이 아니었다. 무너진 아파트 잔해가 도로를 덮었고,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구조대와 가족들이 손전등을 비추며 생존자의 흔적을 찾았다. 시간이 갈수록 희망은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절망의 현장 한복판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루 넘게 잔해 속에 갇혀 있던 4살 아이와 부모가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27일 현지언론과 미국 NBC와 CNN 영상 등 외신을 종합하면,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의 한 7층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4살 남자아이가 부모와 함께 24시간 넘게 버틴 끝에 구조됐다. 현지시간 25일, 아이의 할아버지 호세 알베르토 갈리폴리는 무너진 건물 앞에서 아들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의 아들 조프람과 며느리, 4살 손자가 이곳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리폴리는 카라카스에 있다가 지진 소식을 듣고 곧장 라과이라로 향했다. 강진으로 도로 곳곳이 막히자 그는 차를 포기하고 걸어서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아파트는 이미 건물의 형체를 잃은 상태였다. 그는 무너진 지하 쪽으로 내려가 아들의 이름을 외쳤으나 찾을 가능성은 말 그대로 제로였다. “현장은 참혹했다.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아들 조프람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아직 살아 있다”.. 잔해 속에서 들려온 희미한 목소리
처음에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몇 차례 더 이름을 부르던 순간, 잔해 속에서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나타난 것처럼 아들 조프람이었다. 그는 아내와 4살 아들과 함께 살아 있었다. 세 사람은 무너진 7층 아파트 잔해 아래에서 24시간 넘게 갇혀 있었다.
갈리폴리 할어버지는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가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꺼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는 일은 무력감과 분노, 불안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결국 산소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먹을 것도, 전기도, 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 구조대는 가족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잔해 속 가족들에게 말을 하게 하고, 특정 지점을 두드리도록 요청했다. 콘크리트 더미를 무턱대고 들어내면 추가 붕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조대와 주민들은 밤새 작은 통로를 만들며 접근로를 뚫었다. 장비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갈리폴리는 “적절한 장비는 부족했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한 의지와 관심,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구조 통로가 열렸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4살 아이였다. 아이는 구조대원에 의해 기적처럼 밖으로 나왔고, 뒤이어 아이의 부모가 잔해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던 가족과 구조대원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라과이라의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사람들은 오랜만에 울음과 박수를 함께 터뜨리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됐다.
18일 된 신생아도 어머니 품에서 생환
기적은 또 있었다. 라과이라의 또 다른 8층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는 어머니 다야나 파티뇨와 생후 18일 된 아들이 잔해 속에서 발견됐다. 두 사람은 무너진 건물 더미 아래 깊숙이 갇혀 있었다. 파티뇨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잔해에 눌린 상태였지만, 아기를 품에 꼭 안고 버텼다.
자원봉사자 메를리 아드레이나 킨테로는 현장에서 약 12시간 동안 모자를 찾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 속으로는 '이미 숨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 자원봉사자들은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구조대의 지시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은 잔해를 조금씩 치우며 모자에게 접근했다. 아기가 먼저 구조돼 아버지에게 건네졌고, 어머니도 뒤이어 밖으로 나왔다. 라과이라 지역 의료기관은 이미 부상자로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모자는 카라카스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구조는 금요일 새벽 1시쯤에야 마무리됐다.
킨테로는 “그 어머니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버텼다”며 “어머니와 아기 모두 골절 없이 구조된 것은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쌍둥이 강진이 남긴 폐허 속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는 생존의 신호이자 구조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됐었던 것이다.
무너진 도시, 열린 공간에 몰린 이재민들
라과이라는 이번 베네수엘라 강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수도 카라카스 북쪽에 있는 해안 도시인 이곳은 규모 7.2와 7.5 강진이 1분도 안 되는 간격으로 잇따라 덮치면서 주거용 건물 다수가 붕괴했다. 강진 이후 수천 명의 주민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공터와 거리, 주차장 등에 모여 밤을 보내고 있다. 일부는 텐트를 치고 임시 생활을 시작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라과이라 지역에 군 병력이 투입됐고, 추가 인도주의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당국은 26일(현지시간) 오후 기준 사망자가 920명, 부상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또 베네수엘라의 한 자원봉사 사이트에는 실종 신고가 7만 명 넘게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집계와 민간 신고 사이에 차이가 크지만, 구조 현장의 혼란과 통신 장애를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족을 찾는 사람들은 병원 명단과 임시 대피소, 붕괴 현장을 오가고 있다. 휴대전화가 닿지 않는 가족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구조대는 잔해 속 생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소리를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누군가의 대답, 작은 두드림, 아기의 울음이 생사를 가르는 단서가 되고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수색
강진 발생 후 시간이 흐를수록 구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무너진 건물은 언제든 추가 붕괴할 수 있고, 여진도 이어지고 있다. 도로가 막히고 장비가 부족한 탓에 구조대는 손과 간단한 도구에 의존해 잔해를 치우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현장을 떠나지 못한다. 누군가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이번 구조 사례들이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4살 아이가 잔해 속에서 “괜찮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온 순간, 18일 된 신생아가 어머니 품에서 살아 나온 순간은 단순한 구조 장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폐허가 된 도시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의 구조 현장은 여전히 절망과 희망이 뒤섞여 있다고 전했다. 마치 지난 1995년 무려 299명이 건물 잔해 속에서 사망한 상품백화점 붕괴 때를 연상케 하는 영상들이 베네수엘라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누군가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잔해 앞을 떠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열린 공간에서 밤을 보내며 또 다른 흔들림을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