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베네수엘라 북부를 강타한 연쇄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이틀 만에 900명을 넘어섰다. 실종자는 5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돼, 잔해 수색이 본격화될수록 인명피해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수도 카라카스와 북부 해안 라과이라 일대에서는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한 수색이 이어지고 있지만, 병원과 구조 인력, 중장비가 모두 부족해 구조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26일 현지 TV 연설을 통해 “이번 지진으로 현재까지 920명이 숨지고 3,36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재민도 4,000여 명 발생했으며, 병원 13곳을 포함해 약 1,400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까지 172명이 건물 잔해 속에 고립된 상태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지진은 현지시간 24일 베네수엘라 북부에서 규모 7.2와 7.5 강진이 잇따라 발생한 이른바 ‘쌍둥이 지진’이다. 첫 지진의 흔들림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강진이 덮치면서 피해가 커졌다. 카라카스와 라과이라, 카라바예다 등지에서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과 통신이 끊겼다.
“5만 명 이상 실종”.. 구조 골든타임 빠르게 줄어
실종자 규모는 공식 사망자 수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톰 플레처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5만 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했다”며 “건물 잔해를 수색하는 일은 거대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망자가 앞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도 경고했다.
현장에서는 가족을 찾는 주민들이 병원과 임시 대피소, 붕괴 현장을 오가고 있다. 라과이라의 일부 주민들은 휴대전화 연결이 끊긴 가족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들고 다니며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구조대는 잔해 사이로 작은 두드림이나 목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며 수색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여진도 구조작업의 위험 요인이다. 무너진 건물은 작은 흔들림에도 추가 붕괴될 수 있어 구조대는 잔해를 함부로 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장비가 도착하지 못해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손과 삽으로 콘크리트 조각을 치우며 생존자를 찾고 있다.
병원도 한계.. “수돗물 끊겨 수액으로 손 씻어”
부상자 치료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라과이라주의 한 병원은 수돗물 공급이 끊겨 의료진이 저장해둔 물과 수액으로 손을 씻고, 피가 묻은 병원 바닥을 닦아야 하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병상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응급수술과 외상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장비도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자를 옮길 구급차도 충분하지 않다. 도로 곳곳이 무너진 건물 잔해와 갈라진 포장면으로 막히면서 환자 이송이 지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승용차와 트럭에 부상자를 태워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병원에 도착해도 대기 환자가 많아 곧바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재난 대응 능력이 오래전부터 약화돼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간 이어진 경제 위기와 투자 부족으로 병원 시설과 구급 체계가 낙후됐고, 숙련된 의료진과 엔지니어, 구조 인력 상당수가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대형 재난 대응 역량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강진은 그런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난 재난이 됐다.
최대 676만 명 영향권.. 공항·학교·교통도 마비
유엔 국제이주기구(IOM)의 조이 브레넌 대변인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공동 기자회견에서 “카라카스 주민 200만 명을 포함해 최대 676만 명이 이번 지진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사망자와 부상자 규모를 넘어, 주거와 식수, 의료, 교통, 통신 등 생활 기반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앞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피해 지역에 대한 군 병력 투입과 구조·복구 작업을 지시했다. 카라카스 국제공항은 지진 피해로 폐쇄됐고, 일부 열차와 지하철 운행도 중단됐다. 학교 역시 휴업에 들어갔다. 항공편이 끊기면서 해외 구조대와 구호 물자가 피해 지역으로 들어가는 데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공터와 도로변, 주차장 등에 모여 밤을 보내고 있다. 무너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진 공포 때문에 균열이 생긴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일부 이재민은 텐트를 치고 임시 생활을 시작했지만, 식수와 위생시설,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2차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 구호 본격화.. 한국도 500만 달러 지원
국제사회는 긴급 구호에 나섰다. 스페인과 스위스, 독일, 칠레, 멕시코 등 각국 구조대가 베네수엘라에 도착했거나 이동 중이다. 이들은 생존자 수색견, 음향 탐지 장비, 구조용 절단 장비 등을 투입해 붕괴 건물 수색을 지원할 예정이다. 유엔도 긴급 구호 체계를 가동하고 피해 규모와 지원 수요를 파악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베네수엘라에 5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원금은 긴급 의료, 식수·위생, 임시 거처 마련, 구조·복구 활동 등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지 상황과 국제기구의 수요 평가를 바탕으로 추가 지원 여부도 검토할 방침이다.
미주 지역 국가들도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칠레와 멕시코 등은 구조 인력과 장비를 보내기로 했고, 유럽 국가들도 의료 물자와 긴급 구호품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피해 지역으로 향하는 도로와 공항 시설이 손상돼 구호 물자 배분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잔해 앞에 선 가족들.. 피해 규모 아직 '빙산일각'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잔해 속 생존자 수색이다. 지진 발생 후 시간이 흐를수록 구조 골든타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현장 곳곳에서는 여전히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주민은 붕괴 현장을 떠나지 못한 채 구조대가 잔해를 파헤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난이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취약한 건축물과 낡은 기반시설, 약화된 의료·구조 시스템이 겹친 복합 재난이라고 보고 있다. 첫 번째 지진으로 이미 손상된 건물에 두 번째 강진이 이어지면서 붕괴 피해가 커졌고, 이후 여진과 통신 장애, 의료 공백이 구조작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