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관리자 기자 |
한 번의 강진이 아니었다. 베네수엘라 북부를 강타한 이번 지진은 규모 7급 강진 두 차례가 불과 39초 간격으로 이어진 이른바 ‘쌍둥이 지진’이었다. 첫 번째 지진의 지진파가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강진이 덮치면서 수도 카라카스와 북부 해안 라과이라 일대는 순식간에 잔해더미로 변했다. 구조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확인된 사망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최종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26일 현지 언론 등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지진은 현지시간 24일 오후 베네수엘라 북부 해안 인근에서 발생했다. 규모 7.2 안팎의 첫 강진이 카라카스 서쪽 지역을 흔든 뒤, 39초 만에 규모 7.5의 더 큰 강진이 거의 같은 단층대에서 이어졌다. USGS는 이번 지진을 두 개의 큰 지진이 시간과 공간상으로 매우 가깝게 발생한 ‘더블릿(doublet)’으로 분류했다. AP는 이번 지진의 진원이 카리브판과 남아메리카판이 만나는 복잡한 단층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겼다”.. 사상자 집계 빠르게 증가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호르헤 로드리게스는 국영TV를 통해 이번 지진으로 현재까지 최소 188명이 숨지고 1,520명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종 신고자도 157명에 이르며, 무너진 건물과 쇼핑몰 잔해 아래에 아직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고 말했다. 라과이라와 카라바예다, 플라야 라르가 등 북부 해안 지역에서는 약 250개 건물이 파손되거나 붕괴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구조대가 카라카스와 라과이라 일대의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지만, 장비와 인력 부족, 반복되는 여진, 통신 장애로 수색이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라과이라주에서는 약 7만 가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일부 병원과 외교공관 건물도 손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지질국의 피해 예측 모델은 더 비관적이다. 이번 지진의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가능성이 있으며, 최악의 경우 1만 명을 넘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지진에 취약한 비보강 벽돌조와 흙벽돌 건물이 피해 지역에 많고, 베네수엘라가 오랜 경제난 속에서 기반시설 유지와 재난 대응 역량에 어려움을 겪어온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두 번째 지진이 계단에서 덮쳤다”.. 주민들 차 안에서 밤새워
주민들이 전한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 NBC뉴스에 따르면 카라카스 동부 14층 아파트 3층에 살던 리카르도 코르소 모레노 목사는 월드컵 경기를 보던 중 지진 경보를 받았고, 몇 초 뒤 집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문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가까스로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 두 번째 강진이 다시 건물을 흔들었다. 그는 이후 가족과 이웃들이 추가 지진을 우려해 아파트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밤을 보냈다고 전했다.
라과이라에서 생일을 맞아 가족과 수영장에 있던 호세 롤론도 “바닥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수영장 물이 큰 파도처럼 요동쳤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이 인근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봤고, 쓰나미 가능성을 걱정해 아이들을 데리고 높은 곳을 찾아 이동했다고 전했다.
카라카스 알타미라 지역의 주민 라첼 산도발은 침대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7세 아들을 찾으러 뛰쳐나갔다. 그는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었다”며 “창문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산도발은 지진이 멈춘 뒤 아들을 데리고 계단으로 대피했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해 차 안에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공항 폐쇄·열차 중단·학교 휴업.. 국가비상사태 선포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구조·복구 체계 가동에 들어갔다. 그는 국영TV 연설에서 카라카스의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이 시설 피해로 폐쇄됐고, 구조작업과 기반시설 복구를 위해 지하철과 철도 운행도 중단됐다고 밝혔다. 학교도 이번 주 남은 기간 문을 닫았다.
항공편도 차질을 빚고 있다. 아메리칸항공은 공항 피해로 마이애미와 카라카스를 잇는 항공편을 취소했고, 코파항공도 카라카스 노선 운항을 다음 달 2일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진으로 활주로와 공항 시설 일부가 손상되면서 국제 구조 인력과 구호 물자가 현장에 들어가는 데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통신 장애도 구조작업의 변수다.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는 지진 이후 베네수엘라 전역의 인터넷 접속이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유엔 베네수엘라 진상조사단은 “앞으로 몇 시간과 며칠 동안 정보 접근은 생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당국에 소셜미디어와 언론 접근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지금은 생명을 구할 시간”.. 정치 갈등 넘어선 구조 호소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은 정치적 견해 차이를 뒤로하고 구조와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명을 구하고, 잔해 아래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며, 이 비극의 피해를 직접 겪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하나의 힘, 하나의 목소리, 도움의 손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권한대행은 병원과 주택, 붕괴된 기반시설 복구를 위해 2억 달러 규모의 재건기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구조 장비와 의료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카라카스 알타미라 지역 주민 넬손 오스페달레스는 집 일부가 무너져 친척 집에 머물고 있다며 “물건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지금 소방과 민방위 당국은 완전히 압도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병원도 심각하게 붐비고 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적십자는 피해 규모가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적십자는 수색·구조, 임시 주거시설, 외상 치료와 심리 지원이 당장 필요하며, 앞으로 안전한 식수와 위생, 생필품 공급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유엔·각국 구호 물결.. “크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돕겠다”
국제사회도 긴급 구호에 나섰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델시 로드리게스 권한대행과 통화했다며 미국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와 로스앤젤레스 구조팀을 포함한 수색·구조 인력, 의료 자원, 인도주의 물자를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 정부 전체 차원의 대응이 될 것”이라며 “크고, 빠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의 제러미 루윈 고위 관계자도 재난지원팀과 태스크포스가 이미 가동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비극적 자연재해 이후 중요한 첫 며칠 동안 미국은 수색·구조팀과 의료·인도주의 물자, 다른 자원을 베네수엘라에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미국뿐 아니라 유엔, 멕시코, 스페인, 카타르 등도 구조 지원을 준비하거나 현장 파견에 나섰다고 전했다.
유럽연합도 연대를 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엑스에 “지난밤 발생한 파괴적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베네수엘라인에게 연대를 표한다”며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바의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교장관도 의료진이 피해 지역에서 진료 지원에 나섰다며 애도를 전했다.
민간 구호단체들도 움직이고 있다. 국제 재난대응단체 글로벌임파워먼트미션은 현장 조사팀과 긴급대응팀을 파견했고, 보건 지원단체 프로젝트호프는 의료지원팀과 수색견 구조팀을 대기시켰다. 셰프 호세 안드레스가 설립한 월드센트럴키친도 이재민과 구조대원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활동에 착수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베네수엘라계 의료단체 VAMA의 라켈 루세나 부회장은 “의료물자를 보내기 위해 모금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내 베네수엘라 의사들도 부상자 치료 지원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둥이 지진’의 공포.. 첫 충격이 약화시키고 두 번째가 무너뜨렸다
이번 지진의 피해가 커진 핵심 원인으로는 ‘쌍둥이 지진’의 특성이 꼽힌다. 더블릿 지진은 통상적인 본진-여진 구조와 달리, 비슷한 규모의 큰 지진이 짧은 시간 안에 같은 지역을 연속으로 강타하는 현상이다. 이번 베네수엘라 지진도 첫 번째 규모 7.2 강진 뒤 39초 만에 규모 7.5 강진이 이어졌다. 첫 지진이 건물과 도로, 전력망과 통신망을 약화시킨 직후 더 강한 두 번째 지진이 덮치면서 붕괴 피해가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지진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보코노·산세바스티안·엘필라르 단층 등이 얽힌 베네수엘라 북부의 복잡한 단층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카리브판과 남아메리카판이 서로 비껴 지나가며 응력이 쌓이는 곳이다. AP는 이번 지진이 얕은 주향이동 단층 운동으로 발생했으며, 복잡한 단층 구조가 두 차례 강진의 연속 발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여진 위험도 남아 있다. 미국 지질국은 앞으로 일주일 안에 규모 6급 강한 여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현장에서는 100차례가 넘는 여진이 보고되면서 구조대와 주민 모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무너진 건물 주변에서 구조작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강한 여진은 추가 붕괴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구조 골든타임과의 싸움.. “전체 피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 베네수엘라가 맞닥뜨린 과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무너진 건물 안에 갇힌 생존자를 찾는 골든타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도로가 끊기고 공항이 손상됐으며, 전기와 인터넷 장애가 이어지면서 구조 인력과 장비가 가장 필요한 곳까지 제때 도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전문 장비 없이 손과 삽으로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 수색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 지진은 베네수엘라가 겪어온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재난 대응 체계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도 드러냈다. 병원은 부상자로 붐비고, 약품과 응급장비는 부족하며, 이재민에게 필요한 식수·식량·임시거처도 충분하지 않다. 구조가 늦어질수록 사상자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 적십자는 “전체 인도적 피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차례의 강진이 지나간 자리마다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다 여진 가능성도 적지 않아 구조대의 안타까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