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철 기자 |
유럽이 이른바 ‘죽음의 폭염’ 한복판에 놓였다. 프랑스가 44도가 넘는 '죽음의 폭염'에 휩싸인 가운데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서유럽 곳곳에서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나들면서 학교가 문을 닫고, 야외 행사가 취소되고, 대중교통 운행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더위를 피해 강과 호수, 해변으로 몰린 시민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프랑스에서만 최소 40명이 익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폭염이 단순한 ‘더운 날씨’를 넘어 보건, 교육, 교통, 에너지, 수상안전까지 흔드는 복합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0도 넘긴 프랑스.. 물로 피했다가 참변
NBC뉴스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지난 18일 이후 폭염을 피해 물가를 찾은 시민 가운데 최소 4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상당수는 안전요원이 배치되지 않은 강이나 호수 등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폭염 대응 긴급회의를 앞두고 “더위를 피해 물에 들어갔다가 숨진 사람이 너무 많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프랑스 당국은 감독이 이뤄지는 장소에서만 수영하고, 갑작스럽게 깊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일부 외신 인터뷰에 따르면,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조차도 물에 뛰어들면서 익사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폭염은 이미 기록적 수준이다. 프랑스 기상청 메테오프랑스는 일부 지역의 기온이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남서부 피소스에서는 기온이 44.3도까지 올랐고, 중부 샤토메이양에서도 43도를 넘는 고온이 관측됐다. 프랑스 정부는 50곳이 넘는 데파르트망에 최고 단계인 적색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파리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 음주가 제한됐고, 프랑스 전역의 음악 축제와 야외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수백 곳의 학교도 문을 닫거나 수업 시간을 조정했다.
현지 주민들이 체감하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14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 파멜라 클랩은 NBC뉴스에 “앞으로 며칠이 매우 걱정된다”며 “올해 여름은 이전과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폭염 기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했지만, 정작 집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아 학교가 더 시원할 때도 있다고 했다. 클랩은 “대책이 이 정도밖에 없다는 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스페인·이탈리아·영국도 폭염 비상
스페인도 올해 첫 공식 폭염을 선언했다. 일부 지역의 기온은 44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됐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월드컵 경기 거리응원 행사가 취소됐다. 산불 위험이 커지면서 야외 행사와 일부 공공활동도 제한됐다. 스페인 당국은 고온 시간대 야외 노동을 줄이고, 취약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기후 쉼터와 냉방 공간 운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노인과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전화 확인과 방문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이탈리아 보건부는 로마, 밀라노, 토리노, 베네치아, 피렌체 등 주요 도시를 포함해 15개 도시에 최고 단계의 폭염경보를 내렸다. 이탈리아는 도시별 폭염 위험도를 단계별로 공지하고, 노인과 기저질환자에게 외출 자제와 수분 섭취를 권고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낮 시간대 야외 공사와 노동을 제한하거나 작업 시간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로마와 피렌체 등에서는 분수대와 그늘 공간, 응급 대응 인력 배치가 중요해졌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북상한 뜨거운 공기가 서유럽을 덮치면서 영국 일부 지역의 기온도 40도에 근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2022년 영국이 기록한 역대 최고기온 40.3도에 바짝 다가서는 수준이다. 영국은 불과 몇 주 전에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5월 하루를 기록했다. 폭염이 더 이상 남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서유럽의 일상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영국 보건당국은 고온 건강경보를 발령하고 병원, 요양시설, 학교, 교통기관에 폭염 대응 지침을 내리고 있다. 노인과 어린이, 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은 낮 시간 외출을 피하고, 충분한 물을 마시며, 실내 온도를 낮추라는 권고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많은 주택과 대중교통 시설은 겨울 추위에 맞춰 설계돼 폭염에는 취약하다. 런던 지하철 일부 노선은 냉방 시설이 부족해 폭염 때마다 시민 불편과 안전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
폭염은 기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안전 문제
오스카 브루스 교수(런던대 유니버시티칼리지 도시기후·보건학)는 “이번과 같은 폭염은 고기압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며 “고기압은 구름 형성을 억제해 햇볕을 더 강하게 만들고, 지표면이 달아오르면서 주변 공기까지 데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의 배경으로 고기압이 정체하며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오메가 블록’ 현상을 지목했다. 기후변화가 오메가 블록 자체를 얼마나 자주 만드는지는 더 따져봐야 하지만, 이미 따뜻해진 지구가 폭염의 강도와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는 과학계의 공감대가 이뤄진 상태다.
문제는 유럽 사회가 아직 이 같은 더위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의 많은 주택은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이른바 '열을 보존하는 구조'로 지어졌다. 에어컨 보급률도 미국이나 아시아 대도시에 비해 낮다. 런던에 사는 22세 금융분석가 스테판 크레투는 “밖도 덥지만 집 안은 더 덥다”며 “집이 덫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에어컨이 없는 런던 지하철 출퇴근길에 대해 “땀이 나고, 붐비고, 숨이 막힌다”고 했다.
폭염은 기업과 노동 현장도 바꾸고 있다. 독일에서는 물류기업이 집배원들에게 냉방용품을 지급하고, 건설 현장은 작업 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기고 있다. 철강과 제조업 현장에서는 물과 과일을 추가로 제공하며 온열질환을 막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냉방기와 선풍기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냉방 수요 증가는 전력망 부담으로 이어지고, 가난한 계층은 냉방비 부담 때문에 여전히 더위에 노출된다. 폭염이 건강 문제를 넘어 불평등의 문제로 번지는 이유다.
냉방센터·도시숲·노동시간 조정.. 대응 서두르는 유럽
유럽 각국은 단기 대응과 장기 적응책을 동시에 내놓고 있다. 프랑스는 적색경보 지역에서 학교 폐쇄와 수업 조정, 야외 행사 취소, 공공장소 음주 제한 등을 시행하고 있다. 폭염 행동요령을 문자와 방송으로 반복 안내하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노인과 1인 가구 등 취약계층 확인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일부 학교는 반지하나 그늘이 많은 공간으로 수업 장소를 옮기고, 지자체는 공공건물과 도서관, 체육시설을 임시 냉방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스페인은 폭염과 산불을 함께 관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온 시간대 야외 노동을 줄이고, 건설·농업 등 폭염 취약 업종의 작업시간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는 기후 쉼터를 확대하고, 그늘막과 식수대, 도시 녹지 확충을 기후적응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폭염이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일부 지역에서는 야외 행사와 불 사용을 제한하고, 소방 인력과 장비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보건 중심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보건부는 도시별 폭염 위험도를 공개하고, 위험 단계가 높아지면 노인과 만성질환자에게 외출 자제와 의료 상담을 권고한다. 지방정부는 방문 돌봄과 응급의료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관광객이 많은 도심에는 식수 공급과 응급구조 인력을 늘리고 있다. 농업과 건설 분야에서는 낮 시간대 작업을 피하고, 폭염이 심한 시간에는 작업을 중단하는 방식의 현장 대응이 확대되고 있다.
영국은 폭염을 ‘보건 위기’로 다루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 보건안보청은 고온 건강경보를 통해 병원, 요양시설, 학교, 지방정부가 사전에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런던 등 대도시는 폭염에 취약한 지하철과 버스, 낡은 주택 문제를 장기 과제로 보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도시숲 확대, 포장면 온도 저감, 공공건물 냉방 공간 개방, 취약계층 확인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주택 단열 구조가 겨울 보온 중심으로 설계된 만큼, 여름철 과열을 줄이는 건축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도 폭염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병원과 요양시설의 폭염 대응계획을 마련하고, 도시별 열섬 완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나무 그늘과 물길, 바람길을 확보해 도시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노동 현장에서는 휴식시간 확대, 음료 제공, 작업복 개선, 실내 냉방 조치가 강조된다. 그동안 ‘폭염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북유럽에서도 고온일수가 늘면서 학교, 병원, 대중교통, 노인 돌봄 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응만으로는 한계”.. 결국 온실가스 감축이 핵심
하지만 적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냉방센터를 늘리고, 학교 수업 시간을 조정하고, 도시 그늘을 확대하는 조치는 당장의 피해를 줄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폭염이 점점 더 강해지는 근본 원인을 줄이지 않으면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폭염 대응은 그늘막 설치나 에어컨 보급만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과 건물 효율 개선, 도시계획, 교통, 노동 안전, 보건의료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과제가 됐다.
에너지 인프라도 압박을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강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원전 냉각수 사용에 제약이 생겼고, 일부 발전 설비 운영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강과 호수의 수온 상승은 전력 생산뿐 아니라 수질, 생태계, 농업용수 확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산불 위험도 커진다. 스페인과 프랑스 당국이 야외 행사를 줄이고 인력을 비상 대기시킨 것도 이런 연쇄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유럽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더워지는 대륙으로 꼽힌다.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따르면 유럽의 기온 상승 속도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2025년 유럽 기후 현황 보고서도 지중해에서 북극권까지 폭염, 해수면 온도 상승, 빙하 감소, 가뭄과 산불 위험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폭염은 그 보고서의 경고가 통계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유럽 폭염의 핵심은 ‘얼마나 더웠느냐’만이 아니다. 더위를 피해 물에 들어간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학교가 문을 닫고, 지하철이 멈추고, 전력망과 병원이 압박을 받는 구조가 악순환이 이어지는 게 더 큰 문제다. 결국 폭염은 이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사회 안전의 문제다. 오스카 브루스 교수(런던대 유니버시티칼리지)는 "폭염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막는 진짜 방법은 결국 기후변화 문제를 우리가 마주하고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