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지난 6일 아침 5시 10분경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해변에서 사진을 찍던 여성 두 명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주문진파출소 해안순찰팀이 즉시 출동해 표류하던 30대 여성 2명을 구조했다. 30대 여성 1명은 의식을 잃고 심정지 상태였다. 해양경찰이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뒤 응급실로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함께 구조된 20대 여성은 저체온증 증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두 여성은 해변에서 사진을 찍던 중이었다.
이튿날 인근 해변에서도 7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이들이 갑자기 밀려온 ‘너울성 파도’를 보지 못해 휩쓸린 것으로 판단했다.
과거에도 너울성 파도로 인한 인명사고는 반복됐다.
2020년 강원도 고성군 해변에서는 너울성 파도에 휩쓸린 일가족 4명 중 3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6세 어린이 2명과 이를 구하려던 3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2023년에는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던 20대 4명 가운데 2명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렸고, 이 중 1명이 숨졌다.
특히 강원 동해안은 우리나라에서 너울성 파도 사고가 가장 빈번한 지역으로 꼽힌다. 한 해에 평균 5~10명 정도가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 고성군에서부터 경북 경주시 일부 해역까지를 담당하는 동해해경청에 따르면 2023∼2025년 3년간 관할 지역 내 연안 사고는 330건 발생해 82명이 숨졌다. 이 중 65%인 213건(사망 56명)이 6월에서 9월 사이 여름 성수기에 집중됐다. 사망 사고의 경우 물놀이 중에 발생한 사망자가 37명(66%)으로 가장 많았다. 장소별로는 해안가가 35명(63%)을 차지했다. 이중 상당수가 너울성 파도의 희생자로 판단됐다.
◇먼바다에서부터 조용히 습격한다...“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덮쳤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수욕장과 해안가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다가 순식간에 사람을 덮치는 너울성 파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너울성 파도는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하늘이 맑은 날에도 발생한다.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위험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파도가 높을 때가 아니라, 바다가 너무 평온해 보일 때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어 더 위험하다.
그래서 너울성 파도는 ‘맑은 날의 해양 재난’, ‘침묵의 습격자(Silent Killer)’라고 불리기도 한다.
너울성 파도는 먼바다에서 발생한 강한 바람이나 저기압, 태풍 등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파도가 장거리를 이동해 해안에 도달하는 현상이다. 일반 파도와 달리 주기가 길고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어 평소 잔잔하던 해안에도 갑자기 거대한 물기둥처럼 밀려들 수 있다.
일반 파도는 바람이 부는 즉시 거칠게 부서져 예측이 가능하지만, 너울성 파도는 먼바다에서 웅크린 채 잔잔하게 다가오다가 해안가에서 폭발해 예측하기가 어렵다. 먼바다에서는 물결이 완만해서 알아채기 힘들지만, 이 에너지가 해안가 얕은 물을 만나면 갑자기 수십 배의 크기로 돌변해 솟구치게 된다.
평온한 상태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연속으로 밀려오면서 방파제나 갯바위, 해변에 있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휩쓸어 버린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나 낚시, 물놀이 중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해양경찰은 너울성 파도를 “해안 안전사고의 가장 위험한 변수 중 하나”로 꼽으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너울성 파도, 피할 수 없다...방파제, 갯바위에 가지 말아야
너울성 파도는 일단 덮치기 시작하면 피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파도를 피하는 것보다 위험한 장소에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너울성 파도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해수욕장보다 방파제·갯바위·해안 절벽에서 발생한다.
평소에는 파도가 닿지 않던 곳까지 갑자기 2~5m 높이의 파도가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너울성 파도 사고의 특징은 10분 동안은 발목 정도였다가 갑자기 허리 높이 이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가장 위험한 행동은 방파제 끝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바닷가 바위 위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하는 것, 해안가 테트라포드(삼발이 구조물) 위를 걷는 것 등이다. 가능하면 해안가에서는 구명조끼를 입고 다니는 것이 좋다.
해안에 도착하면 최소 5~10분 정도는 바다를 관찰하는 것이 좋다. 너울성 파도가 있는 날에는 평소보다 파도 간격이 길고 몇 분 동안 잔잔하다가 갑자기 큰 파도가 몰려온다.
기상청은 여름철에 너울 예비특보와 풍랑특보를 발표한다. 맑은 날씨라도 태풍이 수백 km 떨어져 있거나 동해 먼바다에 강한 저기압이 형성되면 너울성 파도가 발생할 수 있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은 17일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양양 해조대 해변에서 연안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너울성 파도와 급경사 해저지형, 스노클링 사고 등 동해안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 유형을 실제 상황처럼 재연했다.
특히 너울성 파도 체험은 바다의 위험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바다였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큰 파도가 덮치면서 구조대원을 순식간에 물속으로 끌고 갔다.
김인창 동해해경청장은 “여름철 동해안은 너울성 파도와 급경사 지형처럼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한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다”며 “바다를 찾을 때는 반드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꼭 준수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위험 ‘이안류’
너울성 파도와 함께 여름철 해변 안전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이안류’(離岸流, Rip Current)다.
너울성 파도는 먼바다의 태풍·강풍이 만든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이지만 이안류는 해변으로 밀려온 많은 양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순식간에 바다 쪽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물에 있던 사람은 순식간에 먼바다로 끌려 간다.
파도가 해변으로 계속 밀려오면 많은 양의 바닷물이 해안에 쌓인다. 이 물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해저 지형이 낮거나 파도가 약한 틈을 따라 좁고 빠른 물길을 형성하며 바다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이안류다. 폭은 보통 10~50m 정도지만, 유속은 초속 1~2m를 넘는 경우도 있어 성인 수영선수도 거슬러 헤엄치기 어렵다.
이안류에 휩쓸리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해안에서 수십~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떠밀려 간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해변 쪽으로 헤엄치려 하지만, 강한 물살을 이기지 못해 체력이 소진되고 결국 익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안류에 휩쓸렸을 때는 해변을 향해 정면으로 헤엄치지 않고 물에 뜬 상태로 체력을 아끼다가 해안과 평행하게 옆으로 이동하면서 이안류 구역을 벗어나 해변으로 돌아오는 게 요령이다.
[해안 안전사고 일반 수칙]
풍랑주의보·풍랑경보가 발효되면 해안 접근을 자제한다.
방파제와 갯바위에서는 사진 촬영이나 낚시를 삼간다.
해안가에서는 구명조끼를 입고 다니는 것이 좋다.
파도가 잔잔해 보여도 바닷가 가장자리 접근을 피한다.
너울성 파도와 이안류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어린이는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물가에 있어야 한다.
기상청과 해양경찰의 너울성 파도 예·경보를 수시로 확인한다.
사고 발생 시 즉시 해경 122 또는 119에 신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