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시각] SK하이닉스 잇단 화재, ‘아차사고’라고 안심해선 절대 안 된다

같은 달 두 차례 화재.. 수천 명 대피가 남긴 경고음
스프링클러가 껐지만,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국재난안전뉴스 |

 

이달 들어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두 차례 화재가 잇따라 발생했다. 과거의 SK하이닉스가 아니다. 시가총액은 무려 1450조원 규모, 코스피시장에서의 비중은 무려 20%에 가까운 기업이다. 이런 기업인 SK하이닉스의 국내 반도체 산업 핵심 생산기지에서 불이 나고, 한 번은 3,600여 명, 또 한 번은 4,0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다행히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람이 숨지거나 중상을 입는 참사는 피했다.
 

지난 1일 청주 4캠퍼스 M15 공장과 M15X 공장을 잇는 가스룸에서 불이 났고, 인체에 유해한 불소가 일부 누출됐다.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이 눈 따가움 등을 호소했고, 공장 직원 수천 명이 대피했다. 이어 12일에는 M15X 공장 가스룸에서 다시 불이 났다. 스프링클러 작동으로 불은 10여 분 만에 꺼졌지만, 회사는 가스 누출 가능성에 대비해 캠퍼스 내 직원 약 4,000명을 일시 대피시켰다. 같은 달, 같은 사업장, 같은 공정과 관련된 공간에서 반복된 화재라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설비 가동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반도체 공장의 생산 차질 여부는 기업과 시장에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안전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비슷한 사고가 짧은 기간에 반복됐는가. 첫 번째 사고 이후 안전 체계를 점검했는데도 왜 다시 불이 났는가.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불이 빨리 꺼졌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그 자체가 안전관리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불이 난 사실, 유해물질 누출 우려가 있었다는 사실, 수천 명이 대피했다는 사실이 이미 경고음이다.

 

산업안전에서는 이를 ‘아차사고(near miss)’라고 부른다.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조건이 달랐다면 중대재해가 될 수 있었던 사건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 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수많은 작은 사고와 징후가 쌓인다고 말한다. 큰 재해 하나 뒤에는 수십 건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건의 아차사고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원리다. 반복되는 작은 징후를 놓치면 언젠가 더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은 일반 공장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민감한 공간이다. 불소 등 반응성이 크고 독성이 있는 물질이 쓰이고, 배관과 가스 캐비닛, 정화장비, 자동소화설비, 감지센서, 환기 시스템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어느 한 장치만 제대로 작동한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구조가 아니다.

 

화재가 작게 시작됐더라도 배관·밸브·센서·환기·대피 안내·작업자 대응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스위스 치즈 모델’이 말하는 재난의 구조다. 여러 방어막이 있어도 각 방어막의 구멍들이 우연히 한 줄로 겹치는 순간, 작은 이상은 대형 사고로 관통된다.

 

이번에도 결과만 놓고 보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했고, 대피도 이뤄졌고, 큰 인명피해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안심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고 보는 편이 안전하다.

 

만약 불이 더 늦게 꺼졌다면, 만약 유해가스가 더 넓게 퍼졌다면, 만약 대피 동선이 혼잡했다면, 만약 화재와 독성가스 누출이 동시에 확대됐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화재와 유해물질 사고는 단순한 설비 사고가 아니라 다수 인명피해와 지역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합재난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일회성 점검이 아니라 위기관리 4단계의 전면 재점검이다. 예방 단계에서는 같은 공정에서 반복된 화재의 근본 원인을 끝까지 밝혀야 한다. 작업 절차, 배관 상태, 가스 혼합 과정, 설비 노후화, 센서 작동, 협력업체 작업관리, 작업자 교육까지 모두 들여다봐야 한다.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말로 끝내서는 안 된다. 원인을 모르는 사고야말로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고다.

 

대비 단계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훈련해야 한다. “작은 불이 금방 꺼졌다”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가스 누출이 확대되고, 정전이나 통신 장애가 겹치고, 수천 명이 동시에 이동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대피 방송은 정확했는지, 외국인·협력업체·신규 작업자도 지침을 이해했는지,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안전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또한, 대응 단계에서는 소방당국, 지자체, 고용노동부, 환경당국, 병원, 회사 내부 방재 조직 간 지휘체계가 분명해야 한다. 복구 단계에서는 생산 정상화보다 안전 확인과 정보 공개가 우선이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고, 국내 증시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책임도 그만큼 크다. 글로벌 첨단기업의 경쟁력은 생산능력과 기술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공정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원인을 밝히고, 얼마나 철저하게 재발을 막는지 역시 기업 신뢰의 핵심이다. 시장은 생산 차질 여부를 묻겠지만, 사회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의 공장은 정말 안전한가이다. 

 

이번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대형 참사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경고를 낮춰서는 안 된다. 작은 불, 짧은 대피, 경미한 부상이라는 표현 뒤에는 훨씬 큰 위험의 그림자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재난은 대개 “그때 제대로 멈췄더라면”이라는 후회와 함께 찾아온다. SK하이닉스와 관계당국은 이번 잇단 화재를 단순한 소동이 아니라 중대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차사고는 사고가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큰 사고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더 큰 사고가 오기 전에 고삐를 바짝 죄여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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