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노인이 오래 산다는 ‘비만역설’..현실에서 정말 통할까

서울대 등 국내외 연구에서 입증돼
지방과 근육은 질병과 싸울 수 있는 ‘예비 에너지’
‘약간 통통한’ 수준에만 해당...고도 비만은 여전히 위험해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일반적인 건강상식으로 보면 비만은 건강에 해롭다. 갖자기 질병의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이나 특정 질병군에서는 과체중이나 경도 비만인 사람이 오히려 더 오래 살거나 사망 위험이 낮다는 이론이 있다.

 

이를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라고 한다. 의학계와 보건학계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뤄지는 현상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여러 연구에서 심부전, 만성신장질환, 일부 암 환자, 그리고 노년층에서 BMI(체질량지수)가 정상 범위보다 약간 높은 사람들이 더 높은 생존율을 보인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BMI 23~27 정도의 ‘약간 통통한’ 체형이 가장 낮은 사망률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국내 연구 사례는 서울대학교 의대 연구팀의 대규모 아시아인 조사다. 약 100만 명의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적 관찰에서, 전체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구간은 BMI 22.6~27.5 사이(국내 기준 과체중~경도 비만)였다.

 

미국 의학협회지(JAMA) 분석으로는 전 세계 288만 명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 결과, 과체중 그룹의 사망 위험이 정상 체중 그룹보다 약 6% 낮게 나타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노년기나 질환 상태에서 ‘약간의 과체중’이 생존에 유리한 이유는 우선 에너지 비축과 영양 상태와 관련 있다. 노년기에는 근육과 체력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질병이나 수술, 감염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 체내에 어느 정도 지방과 근육이 있으면 질병과 싸울 수 있는 ‘예비 에너지’ 역할을 한다. 반면 마른 노인은 병에 걸렸을 때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며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또 단순히 체중(BMI, 체질량지수)만 보면 과체중이지만, 그 안에 적절한 근육량이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노년기 건강의 핵심은 ‘근육량’인데, 체중이 적게 나가는 노인은 근육과 뼈가 동시에 약해져 있을 확률(근감소증 및 골다공증)이 높아 낙상이나 골절 위험에 취약하다.

 

만성 소모성 질환에 대한 저항력도 관련 있다. 암, 심부전,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은 몸을 극도로 파리하게 만드는 ‘소모성 질환’이다. 약간 통통한 상태에서 체중 감소가 시작되는 것이, 이미 마른 상태에서 골격계와 면역계가 무너지는 것보다 생존율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비만역설’을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이를 “살찌는 것이 무조건 좋다”라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BMI는 오직 키와 몸무게로만 계산하므로, 지방이 많은지 근육이 많은지 구분하지 못한다. 통통해서 오래 사는 노인들의 상당수는 지방만 많은 게 아니라 골격근량과 골밀도가 잘 유지된 건강한 체구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배만 나오고 팔다리는 가느다란 ‘복부 비만’(근감소성 비만)은 노년기에도 치명적이다.

 

통계적으로 마른 사람 중에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이미 암이나 당뇨, 심장질환 등 병이 있어서 체중이 빠졌거나 장기 흡연으로 인해 마른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역인과성’(Reverse Causation)이라고 한다.

 

암, 심부전, 폐질환 등 중증 질환이 있으면 체중이 먼저 감소한다. 그래서 연구 시점에 마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질병이 진행 중인 사람이 많이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말라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질병 때문에 체중이 줄어든 사람이 일찍 죽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비만 역설’은 어디까지나 ‘약간 통통한(과체중~경도 비만)’ 수준에만 해당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BMI가 30을 넘어가는 고도 비만은 노년기에도 심혈관 질환, 뇌졸중, 관절염 등을 유발해 사망 위험을 높이고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현재 노인의학 분야에서는 저체중(BMI 18.5 미만)은 명확히 위험하고, 정상 체중보다 약간 높은 BMI(23~27 정도)는 큰 문제가 없고, 고도 비만(BMI 30 이상)은 여전히 심혈관질환, 당뇨병, 관절질환 위험이 증가한다는 쪽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즉, “노인은 살이 좀 쪄야 오래 산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너무 마른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해석이 현재 의학계의 주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