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더 이상 덮어두지 않는다”.. 노동부, 확정판결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2024년 발생 판결 확정 사건 51건 우선 공개
6월 1일부터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공개 제도 본격 시행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한 사고인지, 제조업 사업장에서 기계에 끼인 사고인지, 어느 지역에서 어떤 규모의 기업에서 발생한 재해인지까지 국민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동안 중대재해는 사고 발생 직후 단편적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사고의 경위와 원인, 재발 방지 대책을 담은 재해조사보고서가 공개돼 산업현장의 ‘반복되는 죽음’을 예방하는 공적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27일 고용노동부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을 앞두고 확정판결을 받은 중대재해 사건의 재해조사보고서 51건을 노동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는 2024년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 가운데 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건들이다.

 

재해조사보고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공단이나 관계 전문가가 사고 경위, 직접 원인,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조사해 작성하는 자료다. 사고 현장의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안전조치 미비, 작업 절차의 허점, 관리감독 부실 등 재해 예방에 필요한 핵심 정보가 담긴 것으로, 바꿔말하면 사건 후 조사 보고서의 개념이다. 

 

그동안 이 보고서는 수사와 재판, 행정 절차와 맞물려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현장 사망사고가 반복되면서, 사고 원인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유사 재해를 막기 위해 조사보고서를 공공 정보로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져왔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방안을 포함했고, 이를 반영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해 공포됐다. 개정법은 오는 6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법 시행일 이후 발생하는 중대재해에 대한 재해조사보고서는 원칙적으로 공개 대상이 된다.

 

공개 범위는 개인정보와 영업상 비밀, 국가안보 관련 사항 등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이다. 단순히 사고 발생 사실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재해가 왜 발생했는지,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한지까지 국민과 기업, 연구자가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공개된 보고서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새로 마련된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용자는 재해 발생 기간, 업종, 기업 규모, 지역, 재해 유형 등을 기준으로 보고서를 검색할 수 있다. 예컨대 건설업과 제조업, 50인 미만 또는 50인 이상 사업장, 전국 17개 시도, 떨어짐·끼임 등 주요 재해 유형별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포털에서도 같은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노동부는 보고서 작성 방식도 바꾸기로 했다. 기존 보고서가 재해의 기술적 원인이나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데 상대적으로 무게를 뒀다면, 앞으로는 사업장이 유해·위험요인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현장의 안전 의식과 관리 체계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었는지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편된다.

 

이는 중대재해를 단순한 ‘현장 실수’나 ‘개별 사고’로만 보지 않고, 기업의 안전관리 시스템과 조직문화, 위험요인 관리 방식까지 함께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산업현장에서 조사보고서는 사실상 예방 매뉴얼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번 공개는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한다. 다른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의 구체적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 유사한 공정이나 작업환경을 가진 사업장은 이를 자체 안전점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산업안전 전문가와 연구자들도 공개된 보고서를 바탕으로 사고 유형별 위험요인, 업종별 취약 지점, 안전기술 개발 과제 등을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중대재해는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기업의 책임, 정부의 감독 체계가 함께 맞물린 사회적 사건이다. 사고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산업재해를 둘러싼 사회적 감시와 학습도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우선 2024년 발생 사건 중 판결이 확정된 재해조사보고서 51건을 공개한 데 이어, 2023년 발생한 판결 확정 사건의 보고서도 올해 안에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재해조사보고서 공개를 통해 국민 누구나 중대재해의 상세 경위, 원인 등을 확인하고, 이를 재해예방에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공개된 재해조사보고서가 실제로 산업현장의 재해예방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보고서 내용의 품질 제고, 사업장 대상 안내‧교육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는 중대재해 대응의 무게중심을 사후 처벌에서 사전 예방과 사회적 학습으로 옮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를 숨기거나 개별 사건으로 소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고 원인을 공개하고 공유해 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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