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고가 붕괴] “100여대 열차가 멈췄는데도 시민재해 안 되나”

고가 잔해가 전차선 덮치며 KTX·일반열차·전동열차 줄줄이 차질
시민 불편은 ‘재난급’이지만 중대시민재해 법리는 생명·신체 피해 중심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아니, 기차가 멈춰서서 시민들 아침 출근길 대란인데, 이게 시민재해가 아니고 뭔가요?"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의 파장이 철도망으로까지 번지면서 “100여대 넘는 열차가 멈췄는데도 중대시민재해로 보기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철거 안전진단 중 상판 붕괴가 KTX, 일반열차, 전동열차 등의 운행 차질로 이어지며 출근길 시민에게 큰 불편까지 초래했지만,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 적용은 쉽지 않다는 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소방당국과 코레일 등에 따르면 서소문 고가차도 일부 상판 붕괴 여파로 27일 첫차부터 KTX와 일반열차, 전동열차 운행이 대거 조정됐다. 120여개 KTX를 비롯해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 운행이 중지되거나 운행 구간이 바뀌었고, 행신∼서울 구간 KTX 운행도 중단됐다. 경의선 전동열차 역시 서울∼수색 구간 운행이 멈췄다. 출근길 열차를 이용하려던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운행 중단과 출발역 변경, 지연 안내를 확인해야 하는 등 사실상 출근 대란이다. 더욱이 아침 출근길은 누구에게나 너무 바쁜 시간이다. 

 

그러면 고가도로 상판 붕괴가 이렇게 도미노처럼 피해가 커진 것일까. 사고 지점이 서울 도심 철도망의 핵심 통로였다는 점이 피해를 키웠다. 서소문 고가차도 아래에는 서울역과 신촌·수색·행신 방면을 잇는 철도 구간이 지난다. 이 구간은 단순한 통과 선로가 아니라, KTX와 일반열차가 차량기지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길목이기도 하다. 열차는 운행 전후 정비와 청소, 대기 등을 위해 행신차량기지나 수색 방면을 오가야 하는데, 사고 여파로 이 흐름이 막히면서 열차 운행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것이다.

 

도미노의 핵심은 ‘전차선’이었다. 전차선은 KTX나 전동차가 지붕 위 집전장치인 '팬터그래프'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 고압 전력 설비다. 이 전차선이 끊기거나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해당 구간을 지나는 열차 운행은 안전상 불가능하다. KTX 차량 위에 기다란 선이 바로 전기공급 장치다. 이번 사고에서는 철거 중이던 고가 구조물이 떨어지면서 서울역∼신촌역 사이 전차선 단전이 발생했고, 서울시 등이 복구 작업에 나서면서 코레일은 안전 확보를 위해 열차 운행 구간을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에에 따라, 철도당국은 서울역 혼잡을 줄이기 위해 열차별 운행 구간도 조정했다. 경부선과 호남선 KTX는 서울·용산역 중심으로 운행하고, 강릉·중앙선 KTX는 청량리역 기준으로 운행하도록 했다. 일반열차도 경부선 무궁화호는 대전∼부산, 호남선 무궁화호는 서대전∼목포·여수엑스포, 장항선은 익산∼천안 구간 중심으로 조정됐다. 일부 ITX 계열 열차도 수원역 출발·도착으로 바뀌면서 이른바 '도미노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 정도 규모의 교통 마비는 ‘시민재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수많은 시민이 예매 취소, 지연, 환불, 출근 차질, 일정 변경을 겪었고, 국가기간교통망인 KTX 운행까지 흔들렸다. 시민 입장에서는 명백한 재난 수준의 피해다. 그러나 법률상 중대시민재해는 시민 불편이나 사회적 혼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시민재해를 특정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 가운데 사망자 1명 이상, 동일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동일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 10명 이상이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또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재해는 중대시민재해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한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이번 사고는 우선 중대산업재해 성격이 강하다. 철거 현장과 안전진단 과정에서 업무 관련자 3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반면 붕괴 사고로 인해 시민이 사망했거나, 열차 이용객이 크게 다친 사건도 아니다. 공사와 무관한 시민 1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대시민재해의 부상 기준은 동일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이다. 때문에 시민 피해가 광범위했더라도 대부분은 법이 말하는 ‘생명·신체 피해’가 아니라 이동권 침해, 시간 손실, 경제적 손해, 교통 불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재해로 보기 어려운 또 하나의 쟁점은 사고 원인이 KTX나 전동차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교통수단 자체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으로 승객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외부 철거 현장의 고가 구조물이 무너지며 철도 전차선과 선로 안전에 영향을 준 사안이다.

따라서 코레일이나 열차 관리 주체에게 곧바로 중대시민재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다만 고가차도라는 공중이용시설의 관리상 결함이 시민 신체 피해로 이어졌는지는 별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중대시민재해 적용이 어렵다는 말은 시민 피해가 작다는 뜻이 아니다. 형사처벌 법률이 정한 요건이 좁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번 사고는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중대산업재해 수사가 핵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철거 작업 계획, 침하 발생 후 조치, 현장 진입 판단, 전차선 보호 대책, 발주처와 시공사·감리의 안전관리 책임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민사상 책임도 남는다. 전차선과 레일, 전기·신호 설비 복구 비용, 열차 운행 중단에 따른 손실, 승객 환불과 보상 등은 향후 원인 제공자와 책임 주체를 상대로 한 구상·손해배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철도 운행을 방해한 행위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교통방해 관련 법리 적용 가능성도 수사 과정에서 검토될 수 있다.

 

결국, 법률상 중대시민재해가 아니라고 해서 시민이 겪은 피해가 ‘중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00여대 열차가 멈추고 출근길 시민의 발이 묶인 상황은 노후 인프라 철거 현장의 안전 실패가 도시 전체 기능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선희 파트너변호사<법무법인(유한)클라스한결>은 "중첩법상으로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되긴 어렵지만, 그렇다가 이번 사고가 시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적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중첩법 적용범위를 넘어, 도시 기반시설 해체 공사의 안전 기준과 시민 피해 보상 체계까지 다시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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