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시각] 백악관 앞 총성, 미국은 언제까지 ‘총의 자유’를 견딜 것인가

잇따른 총격 피해로 사망 사건 줄지어.. 인종 분쟁까지
문화.역사적 배경 있지만 총기보유 제한 이젠 합의 거쳐야

 

한국재난안전뉴스 |
 

백악관 인근에서 또 총성이 울렸다. 지난달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콜 토마스가 아닌 콜 토마스 앨런(Cole Tomas Allen)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혐의로 기소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다. 미 법무부는 앨런이 트럼프 대통령을 암살하고 행정부 구성원들을 겨냥할 목적으로 워싱턴DC에 왔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백악관 검문소 인근에서 한 남성이 가방에서 총기를 꺼내 비밀경호국 요원들을 향해 발사했고, 요원들의 대응 사격으로 숨졌다. 행인 1명도 다쳤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최종 협상과 관련해 백악관 안에 있었고, 현장 기자들이 총성을 듣고 대피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 사건의 구체적 범행 동기와 정치적 의도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모든 총격을 곧바로 정치 테러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소가 백악관 검문소였고, 상대가 대통령 경호를 맡은 비밀경호국 요원이었다면 문제는 단순한 도심 총격을 넘어선다. 이는 미국 국가권력의 심장부, 그리고 대통령 경호망 자체를 향한 위협이었다. 한 달 전에는 대통령 참석 행사장이, 이번에는 대통령 집무·거주 공간의 외곽 경계선이 총격 현장이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 근처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것도 대통령을 향한 공격 가능성이 큰 상황이니 말이다. 이른바 군부 쿠데타 같은 일이 아니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도대체 왜 아직도 이렇게 많은 민간인의 총기 휴대를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총기 문화에는 분명 역사적 뿌리가 있다. 청교도 이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 민병대 전통, 남북전쟁, 서부 개척의 경험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미국식 자유관을 만들었다. 중앙정부 권력에 대한 경계심도 총기 보유권을 신성한 권리처럼 떠받치는 배경이 됐다. 수정헌법 2조는 바로 그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다만 이를 단순히 “개인이 언제 어디서나 총을 가질 절대적 권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대법원이 2008년 헬러 판결에서 개인의 자기방어 목적 총기 소유권을 인정했지만, 그 권리 역시 모든 규제를 배척하는 무제한 권리는 아니라고 보았다.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 오늘의 현실을 모두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의 미국은 더 이상 보안관이 늦게 도착하는 서부 개척지의 마을이 아니다. 경찰, 연방수사국, 비밀경호국, 주방위군, 법원과 교정 시스템을 갖춘, 스스로 세계 1위의 강력한 현대국가다. 그럼에도 미국 민간 사회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총기가 풀려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소형무기조사기관인 소형총기서베이(Small Arms Survey)는 2017년 기준 미국의 민간 보유 총기를 인구 100명당 약 120.5정으로 추정했다. 사람보다 총이 더 많은 나라라는 뜻이다.

 

그 결과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자료를 분석한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미국에서 총기 관련 부상으로 숨진 사람은 4만4,447명이다. 여기에는 살인, 자살, 우발 사고, 법집행 관련 사망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23년에만 4만6,728명이 총기로 사망했다. 미국 인구가 3억4천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5천200만명)의 6.5배니, 한국으로 치면 연간 6천800명이 총격으로 사망한 셈이다. 

 

이러한 총격 사건은 미국 사회의 집단 기억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12년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이 숨졌다.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격에서는 49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격은 현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됐다. 2022년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희생됐다. 학교, 예배당, 공연장, 술집, 마트, 거리, 그리고 이제는 백악관 주변까지 총성이 닿지 않는 공간을 찾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의 합의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2024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51%는 총기 소유권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고, 48%는 총기 규제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여론이 거의 반으로 갈라져 있는 셈이다. 총기 소유자 다수는 총을 자신과 가족을 '보호의 수단'으로 본다. 2023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는 미국 총기 소유자의 72%가 보호를 총기 보유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한쪽에서는 총이 생명을 지킨다고 믿고, 다른 한쪽에서는 총이 생명을 빼앗는다고 본다. 이 인식의 간극이 미국 총기 논쟁을 길 한복판에 멈추게 만드는 셈이다. 

 

총기 산업과 정치 로비의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전미총기협회(NRA)와 총기 권리 단체들은 오랫동안 총기 규제 법안에 반대하며 선거와 입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최근 NRA는 내부 비리와 재정난으로 예전만큼의 위세를 보이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총기 권리를 둘러싼 정치적 동원력은 여전히 미국 정치에서 강한 힘으로 남아 있다. 총기 문제는 단순한 안전정책이 아니라 헌법, 정체성, 산업, 선거가 얽힌 복합 갈등이 됐다.

 

하지만 한 사회의 전통이 아무리 깊어도, 그 전통이 반복적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과거의 논리는 이제 다시 한번 논의돼야 한다. 권리는 공동체의 안전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자기방어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생명권과 공포 없는 일상을 무너뜨린다면, 그 자유는 조정되어야 한다. 총기 소유를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이 미국에서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 각 나라에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있고, 미국의 헌법 질서도 한국과 다르다. 그러나 최소한 공격용 화기와 대용량 탄창 규제, 보편적 신원조회, 정신건강 위험군 관리, 안전 보관 의무, 총기 구매 대기기간 같은 현실적 합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민간인의 총기 보유가 엄격히 제한된 사회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뜻도 아니다. 우리에게도 흉기 범죄, 묻지마 범죄, 사회적 분노와 고립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충동과 분노가 총기와 결합하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피해 규모는 달라진다. 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무너졌을 때, 그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가는 공동체 안전을 너무나 크게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악관 앞 총성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자유와 안전의 균형을 어떻게 다시 설계해야 하는지를 묻는 장면이다. 미국은 총을 통해 자유를 지켜왔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총이 자유로운 일상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허용한 무기가 대통령과 시민, 학생과 교사, 그리고 아이들까지 협하는 사회라면, 그 권리는 다시 토론되어야 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에 감놔라 떡놔라 할 처지도 아니지만, 지난 1992년 미국 LA 폭동 사태에서 우리 대한민국 예비군 출신들이 한인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든 장면을 보면 남의 이야기도 아닌 듯싶다. 200년 조금 넘은 짧지만 강렬한 역사를 보유한 미국. 서부 개척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미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총이 아니라, 더 많은 고민과 합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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