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30년전 일인데… 트럼프, 이번엔 쿠바 카스트로에 정조준

1996년 민간기 격추 사건으로 라울 카스트로 기소
“정의 실현” 앞세운 미국…쿠바·중남미는 군사 충돌 가능성 촉각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미국이 30년 전 쿠바 공군의 미국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을 다시 꺼내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살인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다.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쿠바 혁명 1세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올해 94세인 그가 실제 미국 법정에 설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이번 조치는 단순한 과거사 처벌을 넘어 미국의 대쿠바 압박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운까지 감도는 말이 나오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2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20일(현지 시간) 라울 카스트로와 쿠바 군 조종사 등 6명을 1996년 2월 24일 ‘Brothers to the Rescue’ 소속 비무장 민간 항공기 2대 격추 사건과 관련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혐의는 미국인 살해 공모, 항공기 파괴, 살인 등이다.

법무부는 당시 세 대의 소형기가 플로리다 남부에서 쿠바 인근 해역으로 비행했고, 이 가운데 두 대가 쿠바 공군 미그기에서 발사된 공대공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자 4명이 숨졌다고 설명했다. 두 항공기가 “쿠바 영토 밖 국제공역에서 경고 없이 격추됐다”는 법무부의 주장이다. 다만 기소는 유죄 판단이 아니라 혐의 제기에 해당하며,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

 

사건의 뿌리는 냉전 이후에도 계속된 미국·쿠바 갈등에 있다. ‘Brothers to the Rescue’(쿠바난민 구조단체)는 마이애미의 쿠바 망명자들이 만든 단체로,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탈출하는 쿠바 난민을 찾거나 구조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쿠바 정부는 이들의 비행을 인도주의 활동이 아니라 영공 침범과 반정부 도발로 봤다.

이번 기소의 발단이 된 사건은 1996년 당시 라울 카스트로는 쿠바 국방장관이었을 때다. 미국 검찰은 그가 격추 명령 체계의 정점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법무부는 쿠바 정보기관이 이 단체에 침투해 비행 정보를 쿠바 정부에 전달했고, 이 정보가 격추 작전 계획에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정부와 달리 적대세력에 강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기소와 관련해 “늦었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조치”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토드 블랜치 미 법무장관 대행은 마이애미에서 “거의 30년 동안 네 명의 미국인을 살해한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인을 죽인다면 우리는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며 “그가 누구든, 어떤 직함을 갖고 있든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워싱턴의 설명만으로는 이번 조치의 정치적 무게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쿠바 정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특히 올해 초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마약 혐의로 체포해 뉴욕 법정에 세운 뒤, 중남미에서는 미국이 법 집행을 명분으로 정권 교체 압박을 군사 행동과 결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AP통신은 이번 기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쿠바 압박 강화 속에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과 동일하게 이번 기소를 두고 “매우 큰 날”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쿠바에 대한 추가 확전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열세에 있는 쿠바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이번 기소가 “쿠바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라는 어리석음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당시 사건을 조작하고 있으며, 쿠바가 반복적으로 위험한 영공 침범에 당시에 경고해왔다는 점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쿠바 외교부 역시 미국의 압박을 “잔혹하고 무자비한 공격”이라면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투력으로 비교가 안될 상대지만, 어쨌튼 혁명의 상징인 쿠바의 상황은 간단치 않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대목은 기소 그 자체보다 그 다음 단계다. 라울 카스트로가 고령이고 공식 직위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쿠바 권력 구조에서 상징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미국·쿠바 관계 전문가인 피터 콘블루 조지워싱턴대 국가안보문서보관소 연구원은 “이번 기소가 쿠바 지도부에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조치"라면서 새로운 전환국면이 모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쿠바 문제에 대해 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쿠바가 전세계 사회주의 연맹의 큰 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이 쿠바에 대해 제재와 위협을 동원하고 있다며 “내정 간섭”이라고 비판했고, 중국 외교부도 미국이 사법 수단과 제재를 압박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사안이 단순한 미국·쿠바 양자 갈등을 넘어, 미국의 중남미 영향력 확대와 이에 맞서는 반미 진영의 외교전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기소는 미국 내 정치 지형과도 맞물려 있다. 플로리다의 쿠바계 미국인 사회는 오랫동안 카스트로 정권에 강경한 대응을 요구해왔다. 1996년 격추 사건 희생자 가족들도 수십 년 동안 책임자 처벌을 촉구해온 터라,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법적 정의, 반공 노선, 플로리다 정치 기반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문제는 쿠바의 현재 상황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제재 속에서 전력난, 연료 부족, 식량·의약품 부족이 겹치면서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베네수엘라의 약화로 쿠바가 기대온 지역적 후원망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사법 조치가 추가 제재나 군사적 압박으로 이어질 경우, 쿠바 내부의 경제난과 정치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쿠바 정부가 외부 위협을 명분으로 내부 통제를 강화할 반전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1996년 격추 사건의 법적 책임을 묻는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 체제를 향해 던진 정치적 경고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인을 죽이면 30년이 지나도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고 있고, 쿠바는 “미국이 군사 공격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라울 카스트로와의 악수로 상징됐던 유화 정책은 이제 먼나라 이야기가 돼버렸다. 워싱턴과 아바나 사이에는 다시 법정, 제재, 군사적 긴장이 앞서는 시간이 시작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 외에도 또 국제사회가 우려할 데가 또 생겼다는 점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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