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핫이슈] 중대재해처벌법 양형 기준 어떻게 될까

대법원 양형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 양형기준 수정 작업
“사례 많지 않지만 4년 선고 사례 축적”.. 유사 범죄 기준도 참고
‘AI 양형 지원’도 개발 착수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이 국민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이어진 가운데, 법원이 중대재해 사건에 적용할 권고 형량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이 판결과 양형 판단을 지원할 인공지능(AI) 개발에도 착수했다. 법관의 판단을 대체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과거 판결과 양형 통계를 분석해 법관과 양형위원회의 판단을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취지여서, 인공지능이 법원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형기준 설명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 양형기준 마련과 양형 지원 AI 개발 추진 상황을 밝혔다. 


중대재해법 양형, 왜 관심 커졌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2년 1월 시행된 뒤 산업현장 사망사고의 책임을 현장 실무자에게만 묻지 않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할 경영책임자에게까지 묻는 법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법 시행 초기에는 최고경영자까지 사법책임이 귀속된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앞다퉈 별도 안전경영자를 두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실제 선고 결과를 두고는 처벌 수위가 낮다는 비판이 반복됐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법 취지에 비해 법원의 형량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산업계에서는 법 적용 범위와 경영책임자 의무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불만이 제기돼왔다. 결국 양형기준 마련은 중대재해 사건의 처벌 수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맞물려지면서 '송망이 처벌법'이란 비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최승형 상임위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신설 범죄라 양형 통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양형 사례나 참고 사례가 다른 범죄에 비해서 많지 않지만, 4년 정도 선고 사례가 쌓인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 참조할 만한 사례는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법무부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양형기준 설정 요청이 쇄도했다”며 “유사한 범죄, 유사한 사례 양형 인자와 법정형이 같은 범죄를 일부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법 감정’ 반영한 조정 가능성도

중대재해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양형기준이 기존 판결의 평균적 흐름을 단순히 반영하는 데 그칠지, 아니면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조정될지다.

 

최 상임위원은 기존 양형이 국민 법 감정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에 대해 “기본적으로 과거 양형 사례에 기초한 양형기준을 만들면서 ‘규범적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거 판결을 토대로 하되, 법의 취지와 사회적 요구를 고려해 실무보다 높은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형위는 통계 분석을 통해 과거 선고 사례와 양형 인자를 조사한 뒤 전문위원단이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최종안을 의결하고,  이후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확정된 양형기준은 관보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법관 판단 지원하는 인공지능(AI)

이번 설명회에서 또 하나 주목받은 대목은 양형 지원 AI 개발이다. 법원은 올해 예산을 받아 AI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구체적인 기능과 적용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과거 판결과 양형 자료를 분석해 법관과 양형위원회의 통계 분석을 돕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형 지원 AI는 법관의 판단을 대신하는 장치가 아니라, 유사 사건의 양형 분포와 주요 양형 인자를 더 체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보조 수단에 가깝다. 같은 범죄 유형 안에서도 피해 규모, 안전조치 위반 정도, 사고 이후 조치, 재범 여부, 피해 회복 노력 등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만큼, AI가 방대한 판결 자료를 정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법원 판결에 AI가 활용되는 만큼 우려도 따른다. AI가 과거 판결의 관행을 그대로 학습할 경우 기존의 낮은 형량 구조를 반복할 수 있고, 데이터가 부족한 신설 범죄에서는 통계적 편향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처럼 사회적 의미가 큰 범죄는 단순 통계보다 법의 예방 효과와 생명 보호 원칙을 어떻게 반영할지가 중요하다.
 

이번 발표를 맡은 최 상임위원 AI 개발과 관련해 “어떤 범위에서 구성할지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여러 의견을 듣고 AI가 법관과 통계 분석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란

중대재해처벌법의 정식 명칭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노동자나 시민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이행했는지를 따져 경영책임자나 공공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중대재해는 크게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산업재해는 사업장 노동자에게 발생한 사망·중상 사고를 말한다. 건설현장 추락, 공장 끼임, 물류센터 사망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중대시민재해는 일반 시민이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 제조물이나 원료 등의 결함으로 시민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를 말한다. 도로, 교량, 옹벽, 터널, 공공시설 관리 부실로 시민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양형기준 논의에서 중대시민재해는 아직 처벌 사례가 없어 설정 범위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형위는 우선 중대산업재해 치상·치사와 재범 가중처벌 규정을 중심으로 기준을 마련하고, 향후 중대시민재해 사례가 축적되면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양형기준 마련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질적 예방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법이 현장에 보내는 메시지가 약하면 안전 투자는 뒤로 밀리고, 처벌 기준이 지나치게 불명확하면 기업과 공공기관 모두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법원의 새 양형기준과 AI 양형 지원 시스템이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판결 과정에 얼마나 일관되게 반영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한편, 양형기준이란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범죄 유형별로 권고 형량 범위를 정해 유사한 사건에서 지나치게 형량 차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양형기준이 법관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는 사건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양형기준을 벗어난 형을 선고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판결문에 양형기준을 벗어난 이유를 적어야 한다.

 

현재 양형위는 응급의료·구조·구급방해범죄, 교통범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 디지털 성범죄, 대부업법 위반·채권추심법 범죄 등에 대한 양형기준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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