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올여름 한반도의 하늘이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열대 태평양 바닷물이 평년보다 뜨거워지는 엘니뇨. 그중에서 올해 더 심하다는 '슈퍼 엘리뇨'가 다시 발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폭우와 폭염, 태풍, 식량 가격까지 흔드는 복합 기후위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19일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기후예측센터, 기상청,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엘니뇨가 2026년 5~7월 사이 발생할 가능성을 82%로 제시했다. 이어 북반구 겨울인 2026년 12월부터 2027년 2월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96%로 전망했다. 세계기상기구도 올해 중반 이후 엘니뇨가 발달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전 세계 기온과 강수 패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해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다량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집중되면서 집중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지난 23년과 24년 상황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반도 여름 날씨에 영향 줄 엘니뇨 현상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의 중앙·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통상 0.5도 정도 높아지는 자연적인 기후 현상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평상시에는 적도 부근의 무역풍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따뜻한 바닷물을 인도네시아와 호주 쪽 서태평양에 밀어놓는다. 반대로 남미 연안 동태평양에서는 차갑고 영양분이 많은 바닷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용승’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이 무역풍이 약해진다. 서태평양에 쌓여 있던 따뜻한 바닷물이 중앙·동태평양으로 이동하고,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진다. 바다의 온도 변화는 그 위의 대기 흐름을 바꾸고, 대기 순환의 변화는 우리나라에는 여름의 집중호우를 가져오는 것을 비롯해, 전세계의 강수와 기온, 폭풍 발생 양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먼 태평양 변화가 왜 한반도 날씨 흔드나
한반도는 엘니뇨가 발생하는 열대 태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영향을 받는 이유는 ‘원격상관’ 때문이다. 원격상관은 한 지역의 바다 온도나 대기 변화가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날씨와 기후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일종의 날씨와 바름의 도미노 현상이다.
엘니뇨가 발달하면 열대 태평양의 대류 활동과 대기 순환이 달라지고, 그 변화가 제트기류와 고기압·저기압의 위치를 바꾼다. 이 흐름이 동아시아 기압계에도 영향을 미치면 한반도 주변의 장마전선, 북태평양고기압, 수증기 유입 경로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먼 바다의 수온 변화가 한반도 하늘의 비구름과 폭염, 태풍 경로까지 바꾸는 셈이다.
기상청도 우리나라 여름철 기후가 엘니뇨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뿐 아니라 북태평양고기압, 중위도 기압계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고 설명했다. 엘니뇨가 한반도 날씨를 단순하게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름철 기상 변동성을 키우는 중요한 배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어떻게 수증기 몰고 오나
엘니뇨가 한반도에 폭우 위험을 키우는 핵심 통로는 남쪽 바다에서 올라오는 고온다습한 수증기다. 엘니뇨 시기에는 서태평양의 대류 활동이 약해지고, 필리핀해와 남중국해 부근에 고기압성 순환이 발달할 수 있다.
고기압은 북반구에서 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 흐름을 따라 필리핀해와 남중국해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 남부로 밀려 올라올 수밖에 없다. 이 수증기가 장마전선에 계속 공급되면 비구름이 강해지고, 특정 지역에 많은 비가 집중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데, 필리핀해 부근 이상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한반도 남부로 유입되면서 장마가 길어지고 강수량이 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비가 단순히 많이 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 자체가 늘고 있다. 수증기가 많은 상태에서 정체전선이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 시간당 강수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뉴스에 보면 강남 일부 지역시 순식간에 통째로 잠기는 극한호우가 나타날 수 있다. 때문에 도시에서는 지하차도, 반지하 주택, 저지대 도로, 하천변 산책로가 특히 위험해지고, 순간적으로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태풍 줄더라도 비 피해 커진다
엘니뇨 시기에는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 수가 줄어드는 경향도 거론된다. 북서태평양에서 태풍이 평소보다 동쪽, 즉 한반도에서 먼 해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태풍이 먼바다에서 만들어지면 북상 과정에서 일본 동쪽 해상으로 빠지거나, 한반도에 도달하기 전 세력이 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태풍이 줄어든다고 해서 여름철 물난리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태풍과 장마철 집중호우는 작동 원리가 다르다. 태풍은 발생 위치와 이동 경로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장마철 폭우는 수증기 공급 통로와 정체전선의 위치에 더 민감하다.
기후전문가들은 “엘니뇨 때 태풍이 줄 수 있다”는 전망과 “남부지방 강수량이 늘 수 있다”는 전망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태풍은 덜 오더라도, 남쪽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장마전선에 계속 공급되면 국지성 폭우와 장마 장기화 위험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폭염 어떻게 달라지나
엘니뇨가 온다고 해서 한국의 여름 기온이 항상 뚜렷하게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처럼 지구 평균기온이 높은 상태에서 강한 엘니뇨가 겹치면 폭염 양상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습한 폭염’이다. 기온 자체가 기록적으로 높지 않더라도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습도가 높으면 체감온도는 크게 올라간다. 땀이 잘 마르지 않아 몸의 열 배출이 어려워지고, 온열질환 위험도 커지는 만큼 올해 온열질환 환자 증가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특히 밤에도 습도가 높게 유지되면 기온이 잘 떨어지지 않아 열대야가 길어질 수 있다.
안전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올해 여름의 위험은 단순히 낮 최고기온 몇 도로만 판단하기 어렵다고 진잔했다. 강수량, 습도, 체감온도, 열대야 일수, 정체전선의 위치를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나타나거나 동시에 영향을 주는 ‘복합재난’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다.
농작물 영향 없나
농업 부문은 엘니뇨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분야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장마가 길어지고 집중호우가 잦아질 경우 노지 채소와 과수, 벼 재배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상추, 배추, 고추 같은 채소류는 침수와 병해충에 취약하다. 비가 길어지면 수확 시기가 늦어지고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폭염도 문제다.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지면 병해충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가축의 폐사 위험도 높아진다. 축산 농가에서는 냉방과 환기 비용이 늘고, 사료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 생산비 부담이 커지게 된다.
엘리뇨는 국제 농산물 시장도 교란시킨다. 지역별로 정반대의 재난을 만들기 때문이다. 남미 일부 지역에는 폭우와 홍수를, 호주·인도네시아·동남아 일부 지역에는 가뭄과 산불을 일으키게 된다. 이들 지역은 밀, 대두, 옥수수, 팜유, 커피, 카카오 등 주요 농산물 생산지인데, 생산국의 작황이 흔들리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주는 도미노 현상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대비는 ‘평년 장마’가 아니라 ‘극단값’으로 대비해야
과거에도 그랬지만, 대비는 예상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 올해 엘니뇨 대응의 핵심은 평균적인 장마 대비가 아니다. 가장 나쁜 상황, 즉 극단값을 기준으로 대비해야 한다. 이미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안전당국에서 폭우 대비 집중 점검에 나서거나 준비하고 있는데, 시간당 강수량이 갑자기 치솟는 상황, 지하차도와 반지하 주택이 빠르게 침수되는 상황,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토사가 무너지는 상황을 전제로 대응체계를 세워야 한다.
지방정부는 배수시설과 하천, 저지대 도로, 지하차도, 급경사지, 산사태 취약지역을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농업 부문에서는 배수로 정비, 병해충 관리, 침수 취약 농경지 점검, 수급 불안 품목의 선제 관리가 필요하다. 보건 부문에서는 온열질환 취약계층 보호와 무더위쉼터 운영, 폭염·폭우 동시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하며, 특히 감염병 발생 대비를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엘니뇨는 먼 태평양에서 시작되지만, 그 영향은 우리 동네 하천과 지하차도, 농작물 산지와 밥상물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올해 엘니뇨가 실제로 얼마나 강하게 발달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예년에도 이 정도는 괜찮았다”는 식의 대응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올여름 재난 대비의 기준은 평년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여야 한다.
전문가들도 단정적 예측보다 변동성 대응에 방점을 찍고 있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최근 기상청 기상강좌에서 "강한 엘니뇨가 발달할 경우 이상기상 발생 빈도와 변동성이 커진다"며 여름철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