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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해외 출장 일정을 조정해 급히 귀국했다.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예고로 노사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이었다. 이 회장은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입국하면서 국민과 고객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저희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전 세계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는 이어 삼성을 응원하고 질책해온 국민에게도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라고 했다. 파업을 앞둔 기업 총수가 직접 사과와 호소에 나선 것은 그만큼 이번 사안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뜻이다.
이 회장의 메시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노조를 향한 표현이었다. 그는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입니다”라고 했다. 또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노조를 대립의 상대로만 보지 않고, 같은 조직 안에서 함께 책임지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구성원으로 호명한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가 회사의 성장과 이익 증가에 기여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반도체 호황으로 회사 이익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면, 그 성과를 현장에서 땀 흘린 직원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기업이 반드시 답해야 할 문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기업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직원들이 회사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조직의 결속도 오래가기 어렵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성과를 오직 한쪽의 공으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삼성전자, 특히 반도체 부문의 전례 없는 매출과 이익은 현장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인공지능 대중화에 따른 세계적 수요 확대, 글로벌 고객사의 선택, 이재용 회장과 경영진의 미래 투자를 향한 판단, 선대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에 대한 장기적 안목이 함께 쌓인 결과다.
특히, 유튜브 숏츠에 나온 이건희 회장의 초기 반도체 투자 시절의 멘트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미래를 예측했을까' 싶을 정도다. 산업의 쌀이 철강으로만 여겨지던 1980년대 이병철 회장은 "앞으로 반도체는 첨단기술산업의 핵심이자 산업의 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판단과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도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에 오랜 기간 삼성전자를 떠받쳐온 가전·모바일 등 DX 부문의 경쟁력, 삼성 제품을 선택해온 국민 소비자, 그리고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신뢰도 더해져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전사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간 매출액이 우리나라 연간 예산인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이 공항에서 전 세계 고객과 국민에게 먼저 사과한 것은 상징적이다. 삼성전자의 문제는 더 이상 한 기업 내부의 노사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의 12.5%, 코스피 시가총액의 28.2%, 상장사 영업이익의 35% 이상을 차지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반도체 호황과 인공지능 산업 확대로 SK하이닉스와 함께 한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서 역할이 더 커졌다.
상황이 이런데,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은 임금협상 테이블 안에만 갇혀 있을 수 없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생산 차질뿐 아니라 글로벌 고객 신뢰, 협력사 생태계, 국내 증시, 국민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사측이 노동자의 요구를 단순한 비용 증가나 경영 부담으로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노동자가 느끼는 박탈감과 보상 불만이 누적됐다면, 그것은 경영이 풀어야 할 숙제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요구의 정당성과 별개로,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가진 국가경제적 책임과 글로벌 공급망 속 위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겨루기가 아니라 큰 타협이다. 성과급 제도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높이되, 회사의 장기 투자 여력과 위기 대응 능력도 함께 살리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시적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 모두가 “삼성인임을 자부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일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 양측을 만나 대화를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정부가 직접 중재에 나섰다는 것은 이번 갈등이 단순한 개별 기업의 교섭을 넘어 산업과 경제 전반의 안정성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 경영진을 만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공은 다시 노사에게 넘어갔다. 18일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은 총파업 전 마지막 절충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조는 성과의 공정한 배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사측은 회사의 미래와 국가경제적 책임을 설명하며 설득할 의무가 있다. 양측 모두 한 걸음씩 물러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노사상생의 출발점이다.
이재용 회장의 급거 귀국과 사과가 단순한 위기관리용 메시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조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영의 책임을 인정하며, 국민과 고객 앞에 더 성숙한 삼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의 얼굴이자 대들보다. 그 얼굴과 대들보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의 상처가 아니라 타협의 품격이다. 이번 사후조정이 총파업의 전야가 아니라 노사상생의 신호탄이 되기를 대한민국 국민이자 삼성전자 주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