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
더위가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5월 중순인데, 어제 낮기온이 벌써 31도를 넘어섰고, 오늘은 아침인데도 후덥한 느낌이 스멀스멀 묻어나기까지 한다. 폭염이야 예나 지금이나 없었던 게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이제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질병관리청은 오늘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를 운영한다. 전국 500여 개 의료기관과 보건소,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해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자 현황을 파악하고, 발생 정보를 매일 제공하는 체계다. 과거에 비해 선진화하는 느낌이다. 그거 그럴 것이 지난해 온열질환자는 4,460명으로, 감시체계 운영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도 29명에 달했다.
이런 감시체계는 분명 필요하다. 폭염 피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알아야 정책도 세울 수 있어서다. 환자 발생 추이를 신속하게 파악하면 위험 지역과 취약계층을 더 빨리 찾아내고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대세인 상황에서는 이럴 적극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감시체계만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폭염 대책의 핵심은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단순히 카운트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응급실까지 가지 않도록 막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이미 더위에 쓰러진 뒤 집계하는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더위에 쓰러지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온열질환 감시는 출발점일 뿐, 폭염 안전의 완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폭염은 더 이상 단순한 여름 날씨가 아니다.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등 온열질환은 높은 온도에 오래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급성질환이다. 처음에는 두통, 어지러움, 피로감, 근육경련처럼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제때 쉬지 못하면 의식이 흐려지고,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특히 야외근로자들의 경우, 습관적으로 “조금 더 버티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아동, 어르신, 만성질환자, 야외노동자는 폭염 앞에서 훨씬 약하다. 아이들은 체온 조절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사실 우리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르신은 갈증이나 몸의 이상 신호를 늦게 느낄 수 있고, 야외노동자는 위험을 알아도 여건상 일을 멈추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농민, 건설노동자, 배달노동자, 환경미화원처럼 한낮 더위에 노출되는 사람들에게 폭염은 생활 속 불편이 아니라 일터의 재난인 이유다.
그래서 폭염 대응은 질병관리청만의 일이 아니다. 보건당국이 감시체계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용노동부는 야외노동자의 작업중지와 휴식 기준을 점검해야 하고,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무더위쉼터와 취약계층 보호체계를 실제로 작동시켜야 한다. 교육당국은 학교와 돌봄시설의 냉방 환경을 확인해야 하며, 복지당국은 독거노인과 쪽방 주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더 촘촘히 살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논의와 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염은 한 부처의 통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기상, 보건, 노동, 복지, 교육, 교통, 주거가 모두 연결된 복합 재난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위험을 예측하고, 보건복지부는 취약계층을 찾아가고, 고용노동부는 작업 현장을 멈추게 해야 한다. 이 연결이 느슨하면 감시체계는 잘 돌아가도 현장의 피해를 쉽게 줄일 수 없다.
폭염 대책은 아직도 ‘주의하세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매년 형식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쉬고, 무리하지 말라는 안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쉴 수 없는 사람에게 “쉬라”고 말하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냉방비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시원한 곳에 있으라”고 말하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 폭염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안내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쉴 공간, 물, 냉방, 방문 확인, 작업 조정, 응급 이송 체계다.
기후변화는 이런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면서 폭염, 폭우, 가뭄, 산불 같은 극한기후 현상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엘니뇨 영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엘니뇨는 지역에 따라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등 다양한 이상기후를 불러올 수 있다. 과거의 여름 경험만 믿고 대응하기에는 기후의 변동성이 너무 커졌다.
자연재난은 더 이상 산과 강에서만 오지 않는다. 도심의 아스팔트 위에서도, 공사장 철근 사이에서도, 농촌 논밭에서도, 반지하 주택과 쪽방촌에서도 재난은 발생한다. 폭염은 특히 불평등한 재난이다. 같은 31도라도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의 31도와 도로 위 배달노동자의 31도는 다르다. 건강한 성인의 31도와 홀로 사는 노인의 31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염 대책은 평균 기온이 아니라 취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단순히 “올해 몇 명이 발생했는가”를 보는 데서 멈추지 말고, “누가 왜 더 많이 쓰러졌는가”, “그 사람들을 미리 보호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난해 실외 작업장, 논밭, 길가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면 올해는 그 장소에 대책이 먼저 가 있어야 한다.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 환자가 집중된다면 그 시간대에는 작업과 야외활동을 줄이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에는 어린이나 어르신을 차 안이나 밀폐된 공간에 혼자 두지 말아야 한다. 가족 중 고령자가 있다면 하루 한두 번 안부를 확인해야 한다. 길에서 어지러워하거나 의식이 흐려 보이는 사람을 보면 지체하지 말고 119에 신고해야 한다. 폭염 대응은 거창한 장비보다 가까운 사람을 살피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안전은 위험을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위험을 줄이고, 약한 사람부터 보호하고, 피해가 생기기 전에 멈추게 하는 것이 안전이다. 국민이 쓰러지기 전에 쉬게 하고, 위험해지기 전에 찾아가고, 응급상황이 되기 전에 관리하는 것.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진짜 폭염 대책이다. 올해는 그런 폭염대책을 기대해보면 무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