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불똥]⑦호르무즈서 한국선박 폭발화재.. 과거 ‘해상위기’ 정부 대응은?

HMM 나무호, UAE 인근 해역서 기관실 폭발·화재
정부 “피격 여부 포함 사실관계 확인 중”
1987년 탱커전 한국 관련 유조선 피격 사례 거론.. 외교 대응 중심
삼호드림호는 협상, 삼호주얼리호는 군사작전.. 해상위기 대응 방식도 변화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한국 선사가 운용하는 HMM 나무호의 선체 일부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면서 한국 선박의 해외 해상위기 대응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일단 주요 동맹국과 공조한 가운데, 아직 사고 원인을 단정하지 않고, 피격 가능성을 포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 해역이 중동의 핵심 전략 수역인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 선박 화재를 넘어 외교·안보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 가운데 과거 유사 '해상위기'와 사례와 정부 대응이 주목된다. 

 

5일 정부 당국과 외신 등을 종합하면, 지난 4일 한국시간 오후 8시 40분쯤 호르무즈 해협 내측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 운용 선박 ‘HMM 나무’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해당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 6명과 외국인 선원 18명 등 모두 24명이 타고 있었으며,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폭발은 기관실 부근에서 발생했고 선체 좌현 기관실 일부가 손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선사 측은 현재까지, 이번 사고가 선박 내부 사고인지, 외부 공격에 따른 것인지 여부를 확인 중에 있으며, 별도로 특정 상황을 예단하고 있지는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선박의 피격 여부를 포함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며, 1차적으로 우리 국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화재 원인에 대해 파악 중이며 한국인 승선원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 현재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극도의 긴장 상태, 혹은 이를 넘어서 적극 선박에 대해 공격을 서슴치 않은 상황인 만큼, 피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고가 주목받는 이유는 장소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원유와 에너지 물류가 오가는 전략적 요충지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민간 선박 안전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아온 곳이기도 하다.

실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후반에는 이른바 ‘탱커전’이 벌어지며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유조선·상선이 공격 대상이 됐다.

 

美해군사 자료에 따르면 1987년 말까지 이라크는 283건, 이란은 168건의 선박 공격을 한 것으로 정리됐다. 이 시기 민간 유조선과 화물선은 미사일, 기뢰, 고속정 공격에 노출되기로 했다.

 

과거에도 우리나라 선박 역시 이 같은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987년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는 한국 관련 유조선 ‘케이프 애너’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당시 사고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민간 해상 물류까지 위협했던 ‘탱커전’의 연장선에 있었다. 

 

현재까지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해상공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때문에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은 군사적 조치보다는 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와 항행 안전 확보 요청에 초점이 맞춰져 대응에 나섰다. 

 

아울러 석해균 선장의 대수술과 생존으로 유명한 소말리아 해적도 큰 이슈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삼호드림호와 삼호주얼리호 납치 사건이다. 삼호드림호는 2010년 4월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선원 24명 가운데 한국인은 5명이었다. 피랍은 장기화됐고, 선원들은 217일 만인 같은 해 11월 6일 석방됐다. 
 

삼호드림호 사건에서 정부는 군사작전보다 협상과 안전 귀환에 무게를 뒀다. 피랍 초기 외교통상부는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선원 24명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벌였으며, 당시 로이터통신은 석방 대가로 950만 달러가 지급됐다고 보도했고, 국내에서는 거액의 몸값 지급이 향후 한국 선박을 해적의 주요 표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받아들여진 게 현실이다. 

 

이후 불과 몇 달 뒤 삼호주얼리호 사건이 터졌다. 이때는 군사적 개입에 무게를 실은 경우다. 2011년 1월 15일 UAE를 출발해 스리랑카로 향하던 삼호해운 소속 화학물질 운반선 삼호주얼리호가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해 입구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정부는 즉시 외교통상부에 재외동포영사국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삼호주얼리호 피랍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주케냐대사관에 ‘현장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이어 지부티항에 정박 중이던 청해부대 6진 최영함이 긴급 출항했다.

 

정부는 이번에는 협상이 아닌 군사작전을 선택했다. 청해부대는 1월 21일 ‘아덴만 여명작전’을 실시해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한 해적들을 제압했다. 작전 결과 선원 21명은 전원 구조됐고, 해적 8명이 사살되고 5명이 생포됐다. 석해균 선장은 총상을 입고 중상을 입었지만 극적으로 구조된 뒤 이른바 '아덴만의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작전 성공 뒤 담화를 발표하고 “우리 자랑스러운 청해 부대가 드디어 해냈다”며 “우리 군은 어떤 여건에서도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라며 “앞으로도 이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한국군 최초의 해외 인질 구출 작전으로 평가되며, 이후 한국 선박의 해적 대응 장비와 선박 보안 체계 강화 논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과거 사례들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의 해외 해상위기 대응은 시기별로 달라져 왔다. 1980년대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일대의 탱커전 당시에는 외교적 항의와 국제사회 차원의 항행 안전 확보 요청이 중심이었다.

 

2010년 삼호드림호 사건에서는 선원 생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협상과 청해부대 호송을 병행했다. 2011년 삼호주얼리호 사건에서는 관계부처 대책본부, 현장 공관, 청해부대, 특수전 전력을 결합한 군사작전으로 전환했다.


물론, 현재 미국과 이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상태를 고려할 때 과거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이번 HMM 나무호 사고 원인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호드림호·삼호주얼리호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삼호드림호와 삼호주얼리호는 해적에 의한 납치·인질 사건이었고, 이번 사고는 기관실 폭발·화재 원인을 조사 중인 사건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해외 위험 해역에서 한국 선박과 선원의 안전이 위협받았고, 정부가 외교·안보·영사 대응을 동시에 가동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과거 탱커전의 기억이 남아 있는 수역이다. 중동 정세가 격화될 경우 민간 상선과 유조선이 언제든 군사적 긴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고가 단순 기관실 사고로 결론 나더라도, 한국 선박의 중동 항로 안전 관리와 재외국민 보호 체계 점검이 불가피한 이유다.

 

반대로 외부 공격 가능성이 확인될 경우 사안은 선박 사고를 넘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군의 '참전'을 유발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하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불구, 정부의 첫 과제는 단연 선원 안전 확보다. 이어 사고 원인 규명, 현지 당국과의 공조, 추가 항행 위험 평가, 한국 선박 대상 안전 권고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사례가 보여주듯 해외 해상위기는 초기 판단이 대응 방향을 가른다. 협상으로 풀 것인지, 외교 압박을 강화할 것인지, 군사적 보호 조치를 병행할 것인지는 사고 성격과 현지 위험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HMM 나무호 사고가 한국의 해상위기 대응 체계를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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